파국을 향해 내달리는 청년들…반세기 지나도 유효한 오에 겐자부로

진달래 2023. 7. 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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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타계한 '日 문학계 거성' 오에 겐자부로
1973년작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한국어판 출간
은둔 시도한 남성과 기존 질서 이탈한 청년들 통해
연대와 공존, 자연과의 조응 등 문학세계 펼쳐내
'행동하는 일본의 양심'으로 불린 오에 겐자부로는 전후 일본 문단을 이끈 진보 문인이다. 작품 안팎으로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평화와 반전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 은행나무 제공

끊이지 않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 그리고 한국 대통령의 미국 전략핵잠수함 승선. 최근 며칠의 한반도 정세를 보면 '운명의 날 시계'가 떠오른다. 핵과학자들(미국 핵과학자회보·BSA)이 인류 멸망까지의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만든 이 시계는, 올 초 '자정 90초 전'으로 3년 만에 10초 앞당겨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핵 확산 위험 증가와 기후위기 심화 등 때문이다. 물론 시계가 이 문제들을 직접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경보를 울리려 애쓰는 것이다. 문학에서 종말을 배경으로 삼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병폐를 직시하고 기존 체제를 넘어서는 상상력으로, 조금이라도 시각의 변화를 꾀하려는 간절한 마음을 표출하려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1935~2023)의 장편소설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1973) 역시 종말을 예감한 이들이 끝내 희망을 남기는 과정을 쫓아간 작품이다. 50년 만에 한국어판이 최근 정식으로 출간됐다. 오에의 공력이 집결된 이 소설은 작가 개인적 경험(장애가 있는 아들의 탄생)과 사회 비판을 포괄하는 초기 작품 세계를 완결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반세기가 지나도록 해결은커녕 오히려 증폭된 문명사적 위기 때문에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전한다. 한국어판에 실린 1973년 출간 당시 작가와 와타나베 히로시 문학평론가의 대담이 작품 이해를 돕는다.

소설은 '이사나'가 지적장애 아들 '진'과 은둔을 결정하면서 시작된다. 아들의 이상 행동에 놀란 이사나는 오로지 아들을 수호하기 위해 살겠다는 다짐으로 사회와의 단절을 선택한다. 핵 방공호로 짓던 지하에 건물을 쌓아 올린 형태의 '핵 셸터'가 두 사람의 새 보금자리다. 하지만 핵 셸터 근처에 본거지를 둔 '자유해방단' 청년들을 만나면서 사태는 급변한다. 머지않아 대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그날을 대비해 바다에 배를 띄워 대피할 계획을 세운다. 그 과정에서 군·경의 총기를 탈취하는 등 사고가 이어진다. 기존 질서에서 일탈한 청년들, 어쩌면 "쓸모없는 존재들"의 망상에서 출발한 여정이지만, 연대와 공존 그리고 인간뿐 아니라 자연과의 조응 등 오에가 평생 천착했던 문제의식을 오롯이 담고 있다.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1, 2·오에 겐자부로 지음·김현경 옮김·은행나무 발행·348, 376쪽·각 1만7,000원

파국으로 내달리는 인물들의 행보는 무모한 탈주보다는 모험처럼 느껴진다. "관동대지진 때 우리의 괴물 같은 아버지들, 할아버지들은 조선인을 희생 제물로 바쳤었지? 그건 다른 누구보다 조선인이 약했기 때문이야. 이번 대지진이 일어나면 혐오의 대상이 될 약한 인간이란 바로 우리들이야. 우리들이 오늘날의 괴물 같은 아버지들과 할아버지들에 의해 희생 제물이 되는 거라고."

이 대목처럼 명확한 이유가 있어서일까. 버려지기 쉬운 존재인 스스로를 구원하겠다는 의지로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청년들의 모습이 비극적으로만 비치지 않는다. 위기를 초래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자각하는 청년들에게서 언뜻 희망도 엿보인다.

오에의 친자연적 세계관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자신을 나무와 고래의 대변인이라고 생각하는 인물 이사나를 통해 작가의 사상이 표출된다. 이사나는 '다음 세대'에게 세상을 움직이는 건 인간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라는 점을 전하고 싶어 한다. 다만 시대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여성주의적 시각에선 한계가 뚜렷하다. 예컨대 자유해방단의 유일한 여성 일원인 '이타코'는 공동체를 위해 남자를 유혹하거나 돌봄의 역할을 전담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또 폭력적 성(性)의 이미지가 두드러진 대목들도 적지 않다. (이후 작가는 여성의 목소리가 전면에 나오는 '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1982)부터 조금씩 여성에 대해 진보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지난 3월 타계한 오에의 소설을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의 질문이 '동시대적'이라서다. 평화헌법 개정,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며 한반도의 핵위협은 증폭되고 있다. 핵전쟁의 위험, 훼손되는 자연을 목도하면서도 절망하지 않은 작가 오에. 종말을 예감한 그의 평화를 향한 외침이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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