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엔 아직 우크라 아이 수만명이 신음… 끝까지 구출할 것”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3. 7. 2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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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평화대상] 세이브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의 민간 구호 단체 ‘세이브 우크라이나(Save Ukraine)’가 2023년 만해평화대상 수상 단체로 선정됐다. 최근 러시아로 납치된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구출해 온 일로 세계적 주목을 받은 단체다.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친러 반군에 의한 내전 피해 여성과 어린이들을 돕는 일로 시작,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 전역에서 위험에 처한 여성과 어린이들을 구출하고, 이들의 정착과 전쟁 트라우마 극복을 돕고 있다.

미콜라 쿨레바 대표

세이브 우크라이나를 이끄는 미콜라 쿨레바 대표는 “넬슨 만델라, 달라이 라마 등 세계적 평화 운동가들이 받은 만해평화대상을 받게 돼 영광”이라며 “민족 주권과 정의 회복이라는, 만해 정신이 깃든 이 상은 (외세의 침략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상 앞에서 우크라이나 전체 어린이의 20%가 러시아군 치하에서 극심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며 “세상에 알려진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했다.

러시아로 납치당한 우크라이나 어린이와 청소년의 수는 수만명으로 추정된다. 쿨레바 대표는 “미국 예일대는 6000여 명, 우크라이나 당국은 약 1만9500여 명으로 집계하고 있지만, 러시아 당국이 ‘우리가 보호 중’이라고 밝힌 어린이의 공식 수치는 무려 73만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구출 성과(128명)는 전체 피해 아동의 극히 일부”라며 “가능한 한 많은 어린이를 부모의 품으로 되돌리기 위해 더욱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전쟁의 위험에서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어린이들을 강제로 데려가고 있다. 쿨레바 대표는 “이들은 러시아 가정에 강제로 입양되거나, 수련원을 가장한 집단 캠프에서 ‘재교육’을 통해 러시아 어린이로 세뇌되고 있다”고 했다. 납치된 지 불과 2~3주 만에 찾은 청소년이 “우크라이나 나치가 나를 죽일 것”이라며 귀환을 거부하는 경우가 나올 정도다. 이들이 러시아 오지로 인신매매되고, 성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혹도 계속 쏟아지고 있다.

지난 4월 러시아에서 구출된 우크라이나 소년 보그단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다시 만난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로 납치된 보그단을 되찾기 위해 보그단의 가족과 세이브 우크라이나 측은 반년 이상 공을 들였다. /세이브 우크라이나

세이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벨라루스 등 국내외 네트워크를 통해 납치된 어린이의 소재를 파악하고, 러시아 측과 교섭해 데려오는 일을 하고 있다. 말은 쉽지만 극도로 예민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어린이의 신분이 이미 서류상으로 ‘세탁’된 경우가 많아, 원래 신분과 부모의 친권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완벽하게 준비해야 하고, 러시아 당국과 양부모의 동의도 얻어야 한다. 가난한 부모들을 위한 여권 발급부터 러시아로 가는 지난한 여행 지원도 세이브 우크라이나의 몫이다. 어렵고 복잡한 과정 탓에 한 번에 데려올 수 있는 아이의 수는 기껏해야 10여 명이다. 쿨레바 대표는 “지난 3월 어린이 납치 혐의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국제사법재판소(ICC)의 체포 영장이 발부되자, 일이 훨씬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아이를 찾으러 간 부모들은 최대 14시간에 덜하는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의 고강도 심문을 받게 됐다. 심문 후 추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까스로 자녀를 만난 부모들은 선전원들 앞에서 러시아 연방에 감사를 표하도록 강요받는다.

세이브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적 탄압도 벌어진다. 그는 “러시아 FSB가 우리 활동을 면밀히 감시하면서 계속 훼방을 놓고 있다”며 “우리가 지원하는 어머니들을 찾아 위협하는 행위까지 한다”고 했다. 쿨레바 대표는 “러시아 당국이 방해 전술을 중단하도록 국제 기구와 인권 단체 등에 외교적 압력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어린이 납치는 이미 2014년부터 시작됐다. 쿨레바 대표는 “당시 친러 반군 점령 지역(돈바스)에서 어린이들을 강제로 데려가 러시아화 교육을 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증오를 주입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이 중 일부는 체첸 공화국의 캠프에서 세뇌돼 용병으로 키워졌고, 8년여가 지난 지금 우크라이나에 돌아와 동족을 해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납치된 청소년들이 러시아 군복을 입고 러시아화 교육과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는 증언이 나온다”며 한탄했다.

쿨레바 대표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국가 정체성을 파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런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궁극적 목표는 우크라이나 민족의 말살”이라며 “아이들을 죽이는 대신, 납치해 세뇌하고 재교육해 우크라이나를 지워 없애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러시아 지도자들에게 우크라이나 아이들은 러시아의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시베리아의 오지에 보낼 노동력으로, 병사로, 러시아의 영토를 채울 ‘재료’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치인들을 향해 “한국은 공산주의, 독재와 맞서 싸워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온 것에 자부심을 가진 나라”라며 “그런 나라가 우크라이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성공하면 (러시아와 그 동맹국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다른 곳에서 또 침략을 할 용기를 얻게 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은 한국의 국익에도 부합한다”고 역설했다.

쿨레바 대표는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에서 진행 중인 전쟁에 점차 둔감해질까, 살해되고 납치되는 어린이들의 숫자가 단순한 통계가 되어 ‘비극적인 일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될까 두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권리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끝까지 싸워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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