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200] ‘드리다’를 말씀드리자면…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시골 친지네를 찾았다. 정성껏 기르는 온갖 작물이 얼마나 잘 자랐을까. 믿고 먹는 무공해 식품 아니던가.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나는 개울마다 흙탕물이 넘실넘실. 이러다 뭔 일 나겠다 싶더니. 둑 터뜨린 강물이 수많은 목숨을 삼켜버렸다. 물 무서운 줄 숱하게 겪어왔건만.
‘심려를 드려 송구한 마음입니다’ ‘많은 분께 실망을 드려 죄송합니다’ ‘한 가지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말의 ‘드리다’는 넘쳐도 괜찮을까. 이 말은 행위를 겸손히 함을 나타낸다. ‘문안을 드리다, 말씀을 드리다’처럼 상대방을 높여야 바람직할 때 어울리는데 ‘심려’나 ‘실망’이 겸손과 무슨 상관인가. ‘드리다’ 대신 ‘끼치다’가 알맞다. ‘제안’도 ‘하겠습니다’ 하면 그만이요, 꼭 겸손해 보이려거든 ‘방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면 된다.
‘드리다’는 보조동사로도 흔히 쓴다. ‘도와 드리다, 알려 드리다, 붙잡아 드리다’처럼 남을 위하는 느낌이라야 자연스러운데. ‘혼란을 안겨 드린 것에 대해 사과 말씀을 드린다’? 책임이나 손해 따위와 어울리는 ‘안기다’에 ‘혼란’을 붙인 것부터 어색하다. 게다가 남 생각해 혼란을 일으킨다 함은 어불성설이므로 ‘혼란을 끼쳐서’가 옳다. ‘불편/실망을 끼쳐 드려’ 역시 마찬가지. 그냥 ‘~을 끼쳐서’가 옳다.
마구 쓰기로는 접미사 ‘드리다’도 못지않다. ‘공양, 말씀, 불공’ 같은 일부 공손한 행위를 표현할 때 써야 옳건만 거리낌이 없다. ‘상담드리다, 추천드리다, 소개드리다, 설명드리다, 권고드리다, 호소드리다, 치하드리다’처럼. 상담은 서로 의논하는 일이니 어색하고, 추천·소개·설명 따위는 ‘~해 드리다’ 하면 될 말. 권고나 호소는 그냥 할 일이지 어찌 드린다는 말인지. 심지어 아랫사람한테 하는 ‘치하’에 ‘드리다’를 붙여서야.
접미사 ‘드리다’는 예전엔 없던 용법. 워낙 마구 쓰는 탓에 그나마 일부 인정받았을 터. 부디 가려 썼으면 좋겠다. 세상만사, 넘치면 탈 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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