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더 이상의 인재는 그만
청주 오송 지하 차도 침수 참사도 인재(人災)라고 한다. 그 주변엔 참사 4시간 전쯤 홍수경보가 내려졌다. 사고가 발생한 지하 차도는 홍수경보가 발효되면 통제해야 한다고 행정안전부가 정했지만, 충북도는 지하 차도 중심부에 물이 50㎝ 이상 들어차야 통제한다는 별도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24명의 사상자를 내고 말았다.
매년 장마마다 침수 참사가 ‘다시보기’ 하듯 반복된다. 2020년엔 부산 초량지하차도가 침수돼 3명이 세상을 떠났다. 작년 9월엔 경북 포항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인근 하천 물이 들어가 주민 7명이 사망했다. 그때마다 누군가들이 철저히 조사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올해도 결국 똑같이 침수 참사가 일어났고, 희생자는 더 많았다.
2020년 4월 경기도 이천 화재가 생각나 참담했다. 건설 현장에서 불이 나 38명이 숨졌다. 당시 사회부 소속으로 사고 현장에서 지내며 기사를 썼다. 화재의 제일 큰 원인은 ‘까마귀’의 부재(不在)였다. 안전관리자를 칭하는 현장 은어다. 산업안전보건법엔 반드시 안전관리자를 현장에 둬야 한다고 쓰여 있다. 생존자들은 “검은색 조끼를 입고 다녀서 안 보일 리가 없는데, 분명히 까마귀가 없었다”고 했다.
취재 결과 까마귀는 현장 대신 집에서 지내며 수당만 받고 있었다. 화재 다음 날 새벽 경찰서 앞에서 만난 현장 총책임자는 “다른 곳도 다 이렇게 한다. 운이 없었다”고 했다. 이들의 안일함으로 건설 현장을 누비던 부자(父子), 딸의 고교 학비를 위해 일하던 중년 남성 등이 희생됐다.
정부는 이때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48일 만에 나온 조사 결과는 엉뚱하게도 “화재는 불이 잘 붙는 자재인 ‘우레탄폼’ 때문”이라고 매듭지어졌다. ‘불이 붙었기 때문에 화재가 일어났다’는 말과 다를 게 없었다. 그로부터 2년 뒤 대전 아웃렛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졌다. 안전관리자라는 사람이 오작동한다는 이유로 스프링클러, 경보 장치 등을 사실상 꺼뒀다고 한다. 아무리 완벽한 안전 수칙이 있어도 터무니없이 무시되는 곳이 바로 참사 현장이다.
안전이 보장된다고 믿는 사람들 마음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 오송 참사에서 위험을 느끼고 차를 돌려 지하 차도를 빠져나온 사람이 있었다. 급박한 와중에도 창문을 열고 다른 운전자에게 후진하라고 알려준 덕분에 희생자를 줄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역주행으로, 도로교통법이라는 안전 수칙을 어긴 행동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목숨을 살린 판단이었다.각자도생을 택한 게 잘했다고 박수를 받는 게 지금 현실이다.
요즘도 이천 화재 때 만났던 사망자 유족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며칠을 울어 목이 쉰 그들의 통곡은 부들부들 떨리는 작은 저음이 되어 임시 거처 곳곳에서 들려왔다. 오송의 유족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번 진상 조사는 ‘지하 도로가 침수된 건 하천 물이 범람했기 때문’이라는 식의 결과가 나와선 안 된다. 잘 만들어진 안전 수칙이 왜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는지를 알아야 한다. 현장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해 대책을 세우는 게 ‘막을 수 있었던 인재’를 예방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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