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유행민감] “40년전 나는 경고했다, 인간과 터미네이터의 전쟁을”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2023. 7. 2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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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끝장이다. 인공지능 챗GPT가 등장하자 내 페이스북에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서는 그게 뭐라고 비명까지 지르고 난리냐 묻고 싶은 분이 계실 것이다. 사람은 끼리끼리 놀게 마련이다. 소셜미디어는 더 그렇다. 여러분 소셜미디어는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되어 있다. 내 페이스북에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유독 많다. 정치적·문화적으로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래서 소셜미디어가 위험하다.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과 유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하고만 교류하다 편향적 사고를 갖게 되는 에코 챔버(Echo Chamber) 효과가 그래서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내 타임라인의 비명은 조금 과장됐을 수도 있다. 정말?

챗GPT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문자 서비스다. 질문을 입력하면 그에 맞는 답변을 해준다. 이놈의 인공지능이란 어찌나 진화가 빠른지 챗GPT는 등장한 지 몇 개월 만에 미국 의사면허 시험도 통과했다. MBA 시험도 통과했다. 한국은? 몇몇 대학에서는 챗GPT에 과제를 대필시킨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생겨났다. 당신이 조선일보에 대한 과제를 내야 하는 대학생이라면 “조선일보의 특징은 뭐야?”라고 챗GPT에 물을 수 있다. 인공지능은 금세 신문의 특징을 멋지게 요약해 보여줄 것이다. 물론 챗GPT는 아직은 초보적이다. 기존 데이터를 바탕으로 답변을 내놓기 때문에 창의적인 글을 쓸 수는 없다. 작가의 몫을 완전히 빼앗는 일은 아직은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내가 오래전 쓴 글이 인공지능이 쓴 글에 차용된 흔적이 보인다면?

더 난리가 난 직업군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다. 미드저니라는 서비스가 등장하자 페이스북에서는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어 텍스트를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그림을 순식간에 생성해 내는 서비스다. 그림은 글보다 직관적이다. 더 전문적이기도 하다. 글이 광의의 재능에 속하는 영역이라면 그림은 협의의 재능에 속하는 영역이다. 그래서 우리는 배우들 에세이는 즐겁게 읽으면서도 그들이 미술을 한다 나서면 눈을 날카롭게 뜨고 미술 평론가의 태도를 탑재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몇몇 배우의 초보적 그림이 수천만 원에 팔리는 시대에 삐딱한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해보도록 하겠다. 중요한 건 일러스트레이터의 미래다. 미드저니로 만든 그림은 아직 인간미가 부족하긴 하다. 그래도 이미 웹소설 일러스트나 웹툰 분야는 인공지능에 의해 서서히 잠식되는 중이다.

한국에서 인공지능의 저작권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된 것은 아니다. 잠식당하는 직업군이 하나로 뭉쳐 행동을 개시할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저작권자에 대한 보호가 지나치게 느슨한 나라다. 대기업이 저작권을 침해해도 법정에서 그 권리를 보장받기는 쉽지 않다. 사실 나는 내 글의 저작권이 어디에 속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대기업이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쓴 시나리오에 내가 오래전 인터넷에 올린 이야기의 일부가 차용된 것이 틀림없더라도 그걸 인정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행히 할리우드 예술가들이 먼저 나섰다. 지금 할리우드를 멈춰 세워 버린 미국 작가협회와 배우협회의 역사적 파업은 이를테면 인공지능과의 전쟁이다.

5월 2일부터 시작된 미국작가조합 파업의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인공지능 활용이다. 할리우드 제작사들은 이미 인공지능을 이용해 시나리오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제작자들에게는 꽤 매력적인 도구일 것이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떤 시나리오가 관객들에게 잘 먹히는지 예측할 수 있다. 작가인 당신은 제작사가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만든 초안을 넘겨받아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저작권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게다가 그 초안은 누구의 것인가? 인공지능은 스스로 무언가를 창조하는 지능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토대로 무언가를 창조하는 척하는 지능이다. 그 시나리오에 이미 당신이 오래전에 썼던 이야기가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는 소리다.

할리우드 작가 조합은 7월 18일 “대용량 언어 모델 인공지능은 인간 작가들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언어와 스타일과 아이디어를 흉내 내고 있다”며 인공지능 회사와 영화 제작자들에게 서한을 보냈다. 인공지능으로 저작물을 내는 경우에는 데이터에 사용된 글의 작가들에게 대가를 지불하라는 내용이다. 탐욕스러운 할리우드가 쉬이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 배우들도 7월 14일부터 작가들 파업에 동참했다. 역시 쟁점은 인공지능이다. 배우조합은 인공지능으로 생성한 배우의 얼굴과 음성으로 배우를 대체해서는 안 된다며 공장을 멈춰 세웠다. 새 기술로 돈을 아낄 생각에 들떠있던 할리우드 제작자 연맹은 제안을 내놓았다. 인공지능으로 만든 배우의 디지털 초상권을 사용할 때는 동의를 받고 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배우 조합은 이것이 조삼모사라고 반박한다. 조연이나 엑스트라에게 하루 일당을 지급하고 촬영한 분량을 디지털화해서 영원히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제작자들에게 준다면 결국 배우의 몫은 줄어들 것이다. 배우 조합은 그럴 경우 재상영 분배금을 배우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래에 돌아올 돈까지 팍팍하게 계산하는 제작자들이 이걸 쉬이 받아들일 리 없다. 그러니까 이건 미드저니로 직업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일러스트레이터들의 근심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지금 할리우드에서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쟁이다. 나는 인류와 인공지능과의 전쟁이 <터미네이터>(1984)의 방식으로 실현되리라 믿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인류 역사는 인간의 상상력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미래를 써나가는 법이다. <터미네이터> 감독이자 CG 가상 배우 활용의 선구자인 제임스 캐머런의 의견이 궁금해 인터넷을 검색했다. 마침 그는 지금의 할리우드 파업에 대해 한마디를 한 모양이다. 그는 아직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해 감동을 줄 수는 없다고 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말을 하나 남겼다. “난 이미 1984년에 경고했지만 당신들은 듣지 않았다.” 우리 모두 사라 코너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챗GPT의 도움을 받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미 글을 보냈으나 다른 주제의 글을 써달라는 요청이 들어온 탓이다. 마감 시간이 촉박한 터라 인터넷 검색 시간을 아끼기 위해 자료 조사를 챗GPT에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인공지능에 저항하는 사라 코너인가. 터미네이터인가. 나는 지금 존재론적 혼란에 빠져있다. 이 글을 쓰는 데 인공지능을 이용했다는 이유로 원고료가 깎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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