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곡물 만행’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3. 7. 2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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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사 곡물창고 등 사흘째 폭격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인질로 삼아 전 세계에 대한 ‘협박’을 이어가고 있다. 흑해 곡물 협정 참여 중단으로 수출길을 막은 데 이어, 우크라이나의 핵심 항만을 폭격해 곡물 수출 인프라를 파괴하려는 시도까지 하고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곡물 수출 재개를 원하면 우리 요구를 수용하라”며 서방의 경제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국제사회는 “러시아가 세계 최빈국 수억의 목숨을 담보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합리화하는 거래를 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19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주의 한 항구에서 수송선에 곡물을 싣는 크레인이 러시아군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받아 불타고 있다. /로이터 뉴스1

러시아군은 20일 새벽(현지 시각)까지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에 사흘 연속 대규모 공습을 가했다. 이로 인해 30여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고, 오데사 항만의 크레인과 곡물 창고 등 주요 시설이 파괴됐다. 오데사는 흑해에 면한 우크라이나의 최대 항구도시로 현재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의 약 40%를 담당하고 있다.

오데사시 군정 당국은 “19일 새벽 60여 개의 순항미사일과 드론이 날아와 전례 없는 규모의 공습을 한 데 이어 20일 새벽 러시아 폭격기가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며 “곡물 수출 시설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밝혔다.

19일(현지 시각)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손상된 오데사주의 한 곡물 수송 터미널 모습. 이날 러시아군 공격으로 최소 12명이 목숨을 잃었고, 오데사주 일대 주요 항만 시설이 파괴돼 세계 3대 농업 대국인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에 제동이 걸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7일 러시아의 흑해 곡물 협정 참여 중단 선언에 “우크라이나는 유엔과 튀르키예의 협조를 받아 곡물 수출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선사와 기업들도 ‘곡물 운송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전해 왔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가 강경하게 나오자, 러시아는 아예 곡물 수출 능력을 마비시키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국방부는 “20일부터 흑해에서 우크라이나 항구로 향하는 모든 선박을 잠재적 군용 화물 운송선으로 간주하겠다”는 엄포도 놨다. 곡물 운반선에 대한 나포 혹은 격침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분석된다.

러시아가 오데사 등 곡물 수출 항구를 폭격하고, 곡물 운반선에 대한 공격 가능성마저 언급하자 국제 곡물가는 급등세를 보였다. 19일 시카고상품거래소(CMA)에서 거래된 9월 인도분 밀 선물 가격은 전날 대비 11.4% 상승한 부셸(27.22kg)당 7.43달러로 마감했다. 옥수수 가격도 이틀 연속 오르며 도합 8.8% 급등했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은 서방에 대한 ‘청구서’를 내밀었다. 그는 19일 내각 회의에서 “서방이 다섯 가지 요구 조건을 수용하면 즉시 흑해 곡물 협정에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다섯 가지 조건이란 러시아농업은행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재가입과 농기계 및 부품 대(對)러 수출 재개, 러시아 선박의 보험 가입 및 항만 접안 금지 조치 해제, 파괴된 비료 수출용 암모니아 수송관의 복구, 러시아 비료 회사의 계좌 동결 철회 등이다. 이 중 핵심은 국가 간 자금 결제에 쓰이는 SWIFT 재가입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제재로 SWIFT에서 퇴출됐고, 이로 인해 농산물과 비료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국제사회에선 러시아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곡물을 원하는 나라들의 희망을 빼앗고 세계 최빈국들을 강타했다”고 비판했다. 유엔도 “러시아가 기아와 식품 가격 앙등에 직면한 전 세계 수억 명의 생명줄을 위협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한편 러시아 용병 단체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19일(현지 시각) 자신의 소셜 미디어 텔레그램을 통해 공개한 동영상에서 “지금 전선에서 벌어지는 일은 우리(바그너그룹)가 관여할 필요가 없는 치욕”이라며 당분간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여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다만 그는 벨라루스에 도착한 바그너그룹 장병들을 향해 “우리는 벨라루스 군대를 세계에서 둘째 군대로 만들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그들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다른 형태의 참전 가능성을 열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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