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김연아 은메달, 김건희 로드

김석 기자 2023. 7. 2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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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다시 말이 나온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의 김연아 은메달 얘기다. 당시 금메달의 주인공은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였다. 소트니코바가 얼마 전 유튜브 채널 인터뷰에서 그때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2014년 도핑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 난 두 번째 테스트를 받아야 했고, 다행히 두 번째 샘플에서 문제가 발견되지 않아 징계를 받지 않았다”고. 이 발언의 파장이 상당한 모양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재조사를 벌여 문제가 발견된다면 금메달의 주인이 바뀔 수도 있어서다.

김석 경제에디터

하지만 나는 도핑보다는 당시 채점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내가 처음 인터뷰했을 때 김연아는 중학생이었다. 말수가 적고 가냘퍼 보였지만 뭔지 모를 강인함이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대로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4 소치 올림픽 때도 김연아는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2013년 세계선수권 우승자로 올림픽 2회 연속 우승에 도전했다. 경쟁자로는 홈 이점을 등에 업은 율리야 리프니츠카야, 동갑내기 라이벌 아사다 마오(일본) 정도만이 꼽혔다. 김연아가 쇼트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는 것을 보고 프리 프로그램에서 넘어지지만 않으면 우승할 것으로 생각했다. 2002 솔트레이크 올림픽에서 미셸 콴(미국)이 넘어지는 바람에 금메달을 놓치는 것을 현장에서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넘어지기는커녕 경기를 잘하고도 은메달이라니. 그것도 우승 후보로 전혀 언급되지 않던 선수에게 밀려서.

피겨스케이팅은 복싱이나 축구처럼 상대와 맞대결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카운터펀치 한 방으로 KO로 이긴다거나, 역습 한 번으로 승리를 거둘 수 없다. 오히려 가요 콘테스트와 비슷한 면이 있다. ‘클래스’가 한 단계 낮은 선수가 상대의 실수도 없는데 우승한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소트니코바가 그랬다.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심사위원 중에는 러시아 빙상연맹 사무총장의 부인도 있었다. 특정 숫자의 심판들 점수가 소트니코바는 특별히 높고, 김연아는 매우 낮은 것도 미심쩍었다.

소치 올림픽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터진 러시아의 도핑 스캔들이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러시아가 정부 주도로 각 종목 선수들에게 금지약물을 투여하고, 도핑 샘플을 조작·은폐했다는 의혹이었다. 선수들에게 약물을 투여할 정부라면 심판 판정에도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의심을 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평가받는 일이 한국에도 생겼다. 서울~양평 고속도로의 종점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 근처로 바뀌었다. 이른바 ‘김건희 로드’ 의혹이다. 물론 정부가 내놓은 새 노선의 점수는 좋다. 환경 훼손과 주민 피해가 적고, 경제효과는 높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평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우선 새로운 노선은 당초 전혀 거론되지 않은 노선이라는 점이다. 그런 무명의 노선이 2년 전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마친 노선을 밀어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예타를 마친 뒤에는 더 좋은 노선이 있어도 바꾸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예타를 마친 노선이 이번처럼 크게 바뀌는 일은 이례적”이라고 했다.

양평에 땅을 가진 공직자는 많지만 김 여사 일가의 경우는 이들과 많이 다르다. 이에스아이앤디(ESI&D)라는 부동산 개발회사를 운영하는 사업자들이기 때문이다. 다른 공직자들은 집 근처에 도로가 나면 집값이 오르는 정도지만 이들은 이익의 규모가 달라진다.

김 여사 일가는 선산이라는 가족의 땅도 오래전부터 개발 가능한 땅으로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김 여사 일가는 공무원들과의 유착 의혹도 받고 있다. 이들에게 임의로 사업기간을 연장해준 양평군 공무원 3명이 최근 불구속 기소됐다. 김 여사의 오빠도 이 사건과 관련해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양평군수 출신으로 몇달 전까지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김선교 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이던 시기에 한 행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당선인이) 장모님 때문에 김선교가 고생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아요” “허가 이렇게 잘 내주고”.

이런데도 공무원들이 내놓는 채점표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업계 관계자는 “의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김석 경제에디터 s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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