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에 과학 한 스푼] 밀가루도 힘이 있다
밀가루만큼 널리 쓰이는 식재료가 또 있을까요? 쌀, 옥수수와 함께 3대 곡물 가운데 하나로서 생산량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용도 또한 무척이나 다양합니다. 주로 빵을 만들 때 사용되지만, 다양한 면요리의 재료이기도 하고 튀김의 바삭거림 또한 이 밀가루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이처럼 밀가루가 요리계의 팔방미인인 이유는 그것만의 고유한 특성 때문입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반죽상태가 갖는 특성 때문이죠.
밀가루는 물을 섞어 반죽하면 할수록 점착성과 탄력성이 점차 커집니다. 잘 달라붙는 점착성이 있으니 다른 식재료와 혼합해 요리하기에 용이합니다. 반죽에 여러 식재료들을 혼합하고 조리방식에 변화를 주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요리가 가능하죠.
한편 탄력성 있는 반죽은 완성된 요리에 쫀득한 식감을 부여합니다. 만약 이 탄력성이 없다면 빵과 면 특유의 식감은 결코 맛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특성은 밀가루의 구성성분과 관련이 있습니다. 밀가루는 대부분 탄수화물로 구성되지만, 10% 정도의 단백질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단백질은 주로 글루테닌과 글리아딘이라 불리는 것들인데요. 가루상태에서 이 두 단백질은 따로 분리돼 있지만, 물을 섞어 반죽하면 매우 흥미로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 단백질들이 혼합돼 엉키면서 점착성과 탄력성이 있는 얇은 막 구조의 복합 단백질을 형성하는 것이죠. 이렇게 만들어진 복합 단백질을 우리는 글루텐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밀은 그 품종 등에 따라 단백질 함량이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그 함량이 13% 이상인 밀을 원료로 만든 밀가루를 ‘강력분’이라 하는데, 주로 빵을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반죽하는 과정에서 글루텐이 많이 형성되어 반죽의 점착성과 탄력성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주 쫄깃한 식감을 만들어 낼 수 있죠. ‘중력분’은 강력분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조금 적은 9~13% 수준인데, 대부분 면을 만드는 데 쓰입니다. 빵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쫄깃한 식감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단백질 함량이 9%보다 적은 밀가루를 ‘박력분’이라 부르는데, 반죽을 해도 탄력성이 그리 크지는 않아 쫀득함보다는 바삭거림이 강조되는 튀김요리나 제과용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이란 이름에는 모두 힘을 의미하는 ‘력(力)’ 자가 들어 있습니다. 밀가루가 어떤 종류의 힘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내는데요. 강력분은 가장 힘이 센 밀가루이고, 중력분 그리고 박력분의 순으로 그 힘이 약해집니다.
굳이 밀가루에 힘의 의미를 부여한 이유는, 과거에는 실제로 반죽의 힘을 측정해 밀가루를 분류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표준이 된 방식은 1921년 프랑스의 사업가 마르셀 쇼팽이 개발했는데, 납작한 밀가루 반죽에 바람을 불어넣어 기포가 터지기 전까지 저항하는 정도를 측정했습니다. 이후에 그 저항력에 따라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으로 밀가루를 분류하게 되었죠.
요리는 그 적합한 재료의 선정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과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니, 요리가 과학인 또 하나의 이유인 셈입니다.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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