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일의 보이스 오버] 좌파가 싫어하는 영화의 대박
지난 7월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개봉한 영화가 화제다. 5년 가까이 창고에 방치되었던 저예산 영화가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것이다. 평범한 액션물 <사운드 오브 프리덤>이 보인 기염의 배경에는 영화적 허구를 압도하는 극우적 음모론이 자리하고 있다.
이 영화는 국토안보부 전직 요원으로 인신매매 피해 아동을 구출해온 팀 발라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아동 성매매라는 부담스러운 소재에다 무명의 멕시코 감독이 연출해서인지 수년간 배급이 막혔었다.
넷플릭스마저 거절해 잊혀질 뻔했던 영화가 기적적으로 극장에 걸렸다. 할리우드와 주류 언론은 팀 발라드와 주연배우 짐 카비젤이 공유한 극우적 음모론이 불편해 영화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장기간 배급되지 못했던 불운과 언론의 냉대는 해괴한 음모론의 근거로 활용되며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미국의 일베라 할 수 있는 큐어논(Qanon) 신봉자들은 민주당이 ‘딥 스테이트’라는 비밀 권력의 하수인으로 아동 인신매매를 담당하고 있다고 믿는다. 주연배우 카비젤은 큐어논이 퍼뜨린 황당한 음모론에 깊이 경도돼 있다. 극우 음모론자들은 이 영화가 공개되기를 꺼리는 세력이 있어 오랜 시간 배급을 미뤘고, 좌파 언론들이 담합해 묻으려 했으며, 극장 체인 AMC는 극장 냉방장치를 고장내면서까지 관람을 방해했다고 분노했다. 좌파들의 방해 공작을 힐난하며 극장에 가지 않더라도 다량의 티켓을 구매하여 영화의 흥행을 도움으로써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다. <사운드 오브 프리덤>을 관람한 관객의 다수는 백인 보수층이다.
보수 정치인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캠프에서는 급진 좌파가 보지 않기를 바라는 영화라 선전하며 지지자들에게 티켓을 나눠줬다. 도널드 트럼프도 좌파 언론이 영화에 이념을 덧씌워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카비젤이 참석하는 상영회를 계획하는 등 영화의 성공에 편승해 정치적 이익을 챙기고 있다.
극장을 찾은 관객들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호평이다. 영화에 둘러진 정치적 외피와 무관하게 구조 플롯을 솜씨 좋게 연출한 준수한 장르영화로 평가되고 있지만 <사운드 오브 프리덤>의 흥행 비결로는 부족하다. 적당히 잘 만들어진 액션물은 차고 넘친다. 배급사 엔젤 스튜디오스의 시류를 읽는 안목 덕에 창고에서 썩고 있던 B급 액션물로 사회적 이슈 몰이와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엔젤 스튜디오스의 대표 재러드 지시는 영리한 흥행 전략으로 <사운드 오브 프리덤>을 팔았다. 미국에서 아동 성매매는 공분을 사기에 충분한 범죄다. 지시는 사람들의 연민과 정의감을 자극하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배급과 홍보 마케팅 비용을 마련했다. 매년 200만명의 아이가 인신매매 피해로 고통당하고 있다며, 선구매 목표액을 200만장으로 정해 140만장을 팔아치웠다. ‘페이 잇 포워드(Pay IT Forward)’ 형식으로 회사나 종교단체에 티켓을 대량으로 판매했다. 여기에 극우 음모론자들이 가세하면서 영화가 대박을 친 것이다.
한국에서 <82년생 김지영>이 개봉된 후 성대결 논쟁이 일었다. 이때 여성 관객들이 극장에 가지 않고 티켓 예매로 의사 표현을 했다. 한국의 ‘영혼 보내기’ 현상을 벤치마킹한 것일까. 지시는 카비젤의 음모론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면서도, 내심 좌우의 정치적 갈등이 표팔이에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했을 것이다.
<사운드 오브 프리덤>은 극우의 음모론에 안성맞춤인 소재와 우연이 촉발시킨 오염된 영혼 보내기로 돈을 번 영화다. 영화사에 창의적(?)인 마케팅의 예로 기록될 것이며 자주 악용될 것이다.
서정일 명필름랩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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