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비는 막을 수 없어도, 차도는 막을 수 있다
언제까지 재난 참사를 지켜봐야 하나. 우리는 이미 이태원 참사를 경험했다. 당시 시민들은 이태원 참사 가능성을 알리는 전화를 관계기관에 수차례 했다. 그러나 연락을 받은 기관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비규환의 골목에서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그 당시, 이태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용산 경찰서장은 뒷짐을 지고 현장으로 걸어갔고, 용산 구청장의 대응은 안일했다. 이후 관계 부처 해명은 듣는 귀를 의심케 했다. 변명을 넘어 핑계로 일관했다. 수사본부에선 관계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약속했지만 이태원 참사 74일의 수사결과는 부실했다. 기소 후 결과는 더 아쉽다. 법원은 사건 관련 피고인 전원에 대해 보석을 허용했다. 과연 이들에게 단죄가 가능할까?
이렇게 이태원 참사 재판 과정이 답답하기 그지없는 상황에서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침수가 일어났다. 이 지하차도 침수로 1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번 궁평2지하차도 침수는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다. 시간과 장소만 바뀌었지 이태원 참사와 거의 동일하다. 침수 사고 발생 전 위험을 알리는 징후가 있었다.
하지만 관련 지자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지자체의 안일한 대응은 지킬 수 있는 1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럼에도 책임을 져야 하는 지자체는 볼썽사나운 책임 돌리기 발언만 하고 있다. 그리고 부랴부랴 만들어진 수사본부는 책임자 문책을 약속하고 있지만 역시나 하는 결과로 마무리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지금 국민은 지자체에 할 수 없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다. 내리는 비는 인간이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침수가 예상되는 차도 통제는 지자체가 할 수 있다. 왜 차량 통제를 하지 않았는지 국민은 묻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답을 해야 한다. 만일 여기에 답을 제시 못하면 ‘중대재해처벌법’상 ‘시민재해’로 처벌받아야 한다.
이태원 참사에 관련된 피고인들 혐의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다. 7년6개월 이하(징역형 경합가중 후 처단형의 범위)로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상 시민재해로 인해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경우에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1년 이상(최고 30년까지 가능)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궁평2지하차도 사건이 시민재해에 해당해 지자체장들을 처벌할 수 있을까? 먼저 중대재해처벌법은 시민재해 책임 주체에 지방자치단체장을 포함하고 있다. 다음으로 시민재해가 ‘공중이용시설’에서 발생해야 한다. 공중이용시설엔 터널구간이 연장 100m 이상인 지하차도가 포함된다.
궁평2지하차도는 전장 685m 지하차도이다. 마지막으로 공중이용시설의 ‘관리상 결함’이 원인이 돼 시민재해가 발생해야 한다. 궁평2지하차도 침수 발생 전 관련 지자체는 주민대피 요청, 차량통제를 요청받았다. 그렇다면 관리주체는 시설물 구조상 발생할 위험이 중대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시설물 사용제한, 사용금지 등의 안전조치를 해야 한다. 안전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관리상 결함이 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지자체장은 관리상 결함이 없다고 한다. 철저한 수사가 필요한 이유다.
지금은 호우가 잠시 멈춰 있다. 그러나 언제든지 집중호우는 다시 시작될 수 있다. 아무리 첨단화된 시대라 할지라도 현장에 사람이 없으면 사고를 막을 수 없다. 현장에 답이 있다. 지자체장은 당장 위험한 시설물이 있는 곳을 직접 찾아 예방조치를 취해야 한다.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데 과함은 없다. 인간이 내리는 비는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주민 대피와 위험한 시설물 사용금지는 할 수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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