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오펜하이머… 美 ‘바벤하이머’ 열풍
“세계는 이날을 기억할 것이다!” 미국의 핵폭탄 제조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던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순간, 화면은 흥겨운 리듬에 맞춰서 인형 캐릭터 바비와 남자친구 켄이 디스코를 추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인형들 세상에 사는 바비들의 눈이 일순간 휘둥그레지더니 새빨간 불길이 솟구친다.
최근 소셜미디어와 유튜브에 앞다퉈 올라오고 있는 ‘바벤하이머(Barbenheimer)’의 예고편 동영상 장면이다. 바벤하이머는 실제 존재하는 영화가 아니다. 미국 원자폭탄 개발사를 담은 전기 영화 ‘오펜하이머’와 만화 같은 영상 구성 속에 사회성 짙은 메시지를 버무린 코미디 ‘바비’를 합친 제목이다. 할리우드의 거장 크리스토퍼 놀런과 가장 잘나가는 여성 감독 그레타 거윅이 각각 메가폰을 잡았다.
전혀 다른 성격의 영화이지만 올여름을 대표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같은 날(21일) 개봉한다. 치열한 흥행 대결을 펼칠 두 영화가 줄곧 화제가 되자 ‘바벤하이머’라는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 조합돼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마텔사가 만든 세계적인 인형 시리즈를 영화화한 ‘바비’가 인형들의 현실 세계 모험기를 그린 판타지라면, 오펜하이머는 2차 대전을 전후한 긴박한 세계 정세를 담은 묵직한 역사물이다. 마고 로비와 라이언 고슬링(이상 바비), 킬리언 머피와 맷 데이먼(이상 오펜하이머) 등 할리우드의 연기파 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다.
처음엔 ‘어느 영화가 더 흥행할 것이냐’를 두고 온라인에서 논쟁이 가열되더니, 급기야 두 영화 예고편을 하나의 작품처럼 이어붙인 사진, 영상 등 자발적으로 만든 창작물이 인터넷에 쏟아지고 있다.
예컨대 인형들 세상에 핵폭탄 폭발을 상징하는 ‘버섯 구름’이 분홍색으로 솟구치고, 여자 주인공 바비가 이를 지켜보고 있는 ‘짤’은 독립된 하나의 영화 포스터처럼 연출됐다. 이 밖에도 핵폭탄 폭발 장면을 바비 여자 주인공 마고 로비의 헤어스타일로 합성하고, 오펜하이머에 등장하는 중절모와 양복 차림의 남성들이 아기자기한 인형 나라인 바비랜드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진도 인기다. 온라인 쇼핑몰에선 이 같은 ‘바벤하이머’ 속 장면들이 그려진 티셔츠, 모자 등 의류가 10~30달러(약 1만2000~3만8000원)씩에 팔린다.
할리우드에서 영화 개봉에 앞서 작품 관련 밈이 유행하는 건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바벤하이머처럼 섞이려야 섞일 수가 없는 판이한 장르의 두 영화를 버무린 밈이 탄생한 건 드물다. 양측 제작사의 마케팅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배급사 워너브러더스(바비)와 유니버설(오펜하이머)이 관객 이탈 위험에도 불구하고 같은 날 개봉을 결정한 데에는 다양한 관객층을 한날 극장으로 불러들이자는 합의가 있었을 것이고, 밈의 탄생이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펜하이머 주연 킬리언 머피는 ‘경쟁작’인 바비에 대해 “100% 보러 갈 것이다. 두 영화의 동시 개봉은 영화계와 관객들에게 아주 멋진 일”이라고 했다.
이 밈의 유행이 작가에 이은 배우들의 집단 파업으로 침체된 할리우드에 활기를 되찾아줄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미국의 마케팅 전문가 에마 파라라는 USA투데이 인터뷰에서 “바벤하이머는 최근 미국에서 유행한 어떤 밈보다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며 “이 덕분에 두 영화는 예상보다 더 높은 흥행을 거두고, 극장가도 다시 활력을 되찾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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