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마음치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근본적 치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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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하다 보면 여러 환자들에게 똑같은 말을 듣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내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료하고 싶어요"라는 것이다.
우울증으로 수년째 약을 먹고 있거나 공황발작이 반복돼서 공포에 떠는 환자, 별 것 아닌 일에도 걱정에 빠지곤 했던 내담자는 각자 증상과 사연이 다 다른데도 하나같이 "근본적인 치료"를 원한다고 했다.
같은 말이라도 사람마다 다른 뜻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일이 잦은 것처럼 환자들이 내게 말했던 "근본적인 치료"라는 말의 의미도 여러 가지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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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고 해소하는 법 익히고 실천해야
유명한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의 강의를 듣고 나서 “내 마음의 문제는 트라우마 때문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존감과 회복탄력성이 낮은 것이다”라고 깨달았다는 어떤 환자는 우울증이 근본적으로 치료되려면 과거의 상처가 없어져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부모-자녀 관계, 양육 환경이 정신 건강에 중요한 건 맞다. 하지만 이미 시간이 훌쩍 흘러버린 후에 부모에게 사과받고, 과거의 트라우마에 대해 정서적 위로를 받는다고 우울증이 없어지진 않는다. 일 년, 이 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정신분석을 받으면 심리 문제의 연원에 다가갈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우울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지는 않는다. “무엇이 근본적인 치료라고 생각하나요?”라고 내가 되물었더니 어떤 환자는 “성격을 바꾸는 거죠”라고 대답했다. 불안증에 시달리는 이유가 성격 때문이니 성격이 바뀌어야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성격 특성이 정신 질환의 발병과 치료 예후와 무관하진 않다. 신경증적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은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시달릴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일반인에 비해 높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신경증적 기질은 약 70%가 유전자에 의해 형성된다. 집중적인 상담을 오랫동안 받아도 성격이 변할 확률은 이미 타고난 유전자가 바뀔 가능성만큼 희박하다. 근본적인 치료를 성격을 뜯어 고치는 것과 동일시해선 안 된다. 성격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다. 단점만큼의 장점이 항상 공존한다. 성격의 그림자에만 초점 맞추지 말고, 밝은 면을 찾아 그것을 확장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정신과 약을 안 먹게 되어야 근본적으로 치료되었다고 할 수 있죠”라고 말하는 환자도 많다. 가벼운 불안과 불면을 경험하고 있다면 짧은 기간 동안만 약을 먹어도 된다. 하지만 재발성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충격적인 사건 후에 심한 공포가 지속된다면 증상이 완화된 이후에도 꾸준히 약제를 복용해야 한다. 재발 방지를 위한 유지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조현병이나 양극성장애 같은 만성 질환은 수 년, 때로는 평생에 걸친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 치료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근본적인 치료로 여기는 환자는 섣부르게 치료를 중단하거나 부적절한 치료법에 매달릴 위험이 있다.
의사가 시키는 대로 치료받아도 가벼운 우울감과 의욕저하가 남았던 한 환자는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근본적인 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다. 만성화된 우울증은 잔여 증상을 남긴다. 공황장애에 시달렸던 환자는 치료가 잘 돼서 발작적 공포는 없어졌지만 ‘또 공황이 찾아오면 어쩌지’라는 예기불안은 떨쳐내지 못했다. 애석하게도 이런 증상들까지 완벽하게 없애주는 치료는 아직까지 없다. 정신 증상을 근원적으로 몰아내려고 덤벼들기보단 우울과 불안이 찾아와도 그것을 견뎌내고 해소하는 대처법을 환자도 익히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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