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프렌즈' 제작자의 호소 "식용개의 울부짖음 들어보라"
미국 시트콤 '프렌즈' 제작자가 말하는 개식용
"나는 개고기를 안 먹지만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는 분들, 저와 개농장에 직접 같이 가보면 생각이 바뀔 겁니다."
미국의 인기 시트콤 '프렌즈'의 제작자이자, 한국의 개식용 문화를 다룬 다큐멘터리 '누렁이'를 만든 케빈 브라이트(68) 감독은 20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브라이트 감독은 복날을 맞아 누렁이의 특별 상영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회색 개량한복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한국 방문을 위해 특별히 구매했다"고 소개했다.
브라이트 감독이 전액 사비를 들여 제작해 2년 전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한 누렁이의 누적 조회수는 76만 회, 영상에 달린 댓글은 4,500개가 넘는다. 그는 누렁이 제작을 위해 2017년부터 4년 동안 국내 개농장 6곳과 도살장을 방문했고 개식용 산업 종사자, 동물단체, 국회의원, 일반 시민 등 50명이 넘는 사람을 만났다.
브라이트 감독은 누렁이 공개 당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개식용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한국 개농장 개를 미국으로 입양 보내는 단체 설립자인 그의 아내와 한국계 미국인 태미의 영향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2017년 한국을 방문해 개식용 문화를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가 한국에 와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뭘까.
누렁이는 한국인을 위해 만든 영화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1년 전 미국 아동 복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온 디즈 그라운드스'(On these grounds)를 개봉했다. 학교에서 정신적 문제가 있는 아동이 말썽을 피웠다고, 교사들은 경찰을 불러 해결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이 문제가 됐다. 이 같은 문제는 유색인종에게 더 가혹하다. 아이들, 특히 정신적 문제가 있다면 더욱 감수성 있게 접근해야 한다. 얼마 전에는 모로코 여행을 다녀왔다. 바쁘게 지내지 않으면 빨리 늙는다. (웃음)"
-누렁이 공개 후 기억에 남는 관객들의 반응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극장에서 누렁이 상영 당시 70대 한국인으로부터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얘길 들었다. 개고기를 먹는 한국인을 비난하거나 창피하게 하려는 의도가 없었고, 다양한 이들의 의견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 점이 잘 전달된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면서 관련 논의가 활발해진 계기가 돼 기뻤다."
-한국과 미국에만 누렁이를 공개한 이유는.
"다른 나라에서 개봉해달라는 요청이 고맙지만 현재는 다른 국가에서 공개할 계획은 없다. 영화의 취지가 한국의 개식용 문화를 고발하려는 게 아니라 한국인을 위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개식용 문제는 오직 한국인만이 결정할 수 있다. 미국에서 개봉한 이유는 미국 내 한국인이 많다는 점을 고려했다."
식용으로 길러진 개와 반려견은 똑같다
-개식용 관련 뚜렷한 진전이 없다는 비판이 있다.
"코로나19로 개를 먹는 사람 수가 현저히 줄었고, 일상으로 회복한 이후에도 크게 늘지 않는다고 들었다. 또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개식용 종식을 위한 특별법안을 발의한 것을 알고 있다. 한국이 변화하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개식용 금지는 결코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준비 없이 갑자기 개식용을 금지한다면 식용으로 길러지는 100만 마리의 처우가 문제가 된다."
-개식용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큰 걸림돌은.
"개식용 관련 법이 일부 있지만, 법을 집행할 예산이나 인력 등 인프라가 없다는 게 심각한 문제다. 식품위생법 등 벌금을 매길 수 있는 법이 있어도 이를 실행하기가 어렵다. 개농장이 실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
-식용개와 반려견은 다르다는 사람들이 있다.
"(휴대폰 화면에 있는 반려견 사진을 보여주며) 식용으로 길러졌다 구조된 반려견들이다. (그는 개농장에서 구조된 호프와 오스카를 입양했다.) 이들은 외모도 성격도 다른 개와 똑같다.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씨도 식용개와 반려견은 똑같다고 했다. 개는 우리와 함께 사는 동물이며 심지어 탐지견, 안내견 등은 사람을 돕는다. 식용개와 반려견이 다르다는 건 개고기를 먹기 위해 합리화하는 것뿐이다."
-개는 안 되고 소, 돼지, 닭은 괜찮냐는 질문이 되풀이된다.
"소나 돼지를 반려동물로 기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소, 돼지, 닭을 기르는 여건이 좋지 않다. 공장식 축산은 기후 변화의 주범이기도 하기 때문에 여기에도 큰 변화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유전자편집기술을 활용한 배양육 개발도 활발하다. 조금 무섭긴 하지만 (웃음) 이 같은 기술 개발이 공장식 축산과 기후 변화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안 먹지만 반대하지도 않는다는 이들도 있다.
"1,000마리의 젖소 농장에 갔다고 상상해보자. '규모가 크구나' 생각할 것이다. 반면 식용으로 길러지는 1,000마리의 개들이 있는 농장에서 그들의 울부짖음을 듣는다면 너무 끔찍할 것이다. 실제 대규모 개농장을 방문할 때 너무 힘들었다. 나는 안 먹지만 반대하지 않는다는 이들은 나와 개농장에 가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미국 내에서 한국 개식용을 바라보는 시각은.
"미국 내에서도 한국인은 개를 먹는 사람(dog eater)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한국을 비난하기도 한다. 다큐를 만들어 미국에서 개봉한 이유 중 하나도 미국인의 이러한 인식을 바꾸고 싶어서였다. 한국에서 변화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미국인의 인식도 바뀔 것이라 생각했다."
개식용 문제, 이제는 결정해야 할 때
-개식용 종식을 앞당기기 위해 조언을 한다면.
"개식용 금지는 먼저 개를 가축에서 제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또 개식용 산업 종사자들과 이를 반대하는 동물단체가 서로 타협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의 역할도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개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나 TV 시리즈가 많이 제작되고, 아이들은 이를 보면서 자란다. 이러한 콘텐츠를 본 아이들은 개고기를 안 먹을 것이다. 예전에 가난해서 개를 먹었다면 이제 한국 국력은 전 세계 6위일 정도로 성장했다. 개식용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개를 반려동물로 인식하고 있어서다. 이제 한국인들이 개식용 문제를 결정해야 할 때다."
-미국 내 동물 관련 이슈는.
"강아지 공장(퍼피밀)에서 강아지를 학대한 사건이 있었다. 또 다른 문제는 밀수한 야생동물이다. 해외에서 야생동물을 밀수해 기르다 여의치 않자 아무 데나 유기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물고기, 새 등을 마음대로 풀어 이들이 번식해 수가 늘고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2년 전 당시 '프렌즈'와 인연이 있는 BTS를 언급한 적이 있다.
"BTS가 당시 '프렌즈: 리유니언'에 출연해 전 세계에 프렌즈를 알린 것에 대해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프렌즈 배우들에게 사인을 받은 대본을 준비했는데, 만날 기회가 없어 집에 보관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프렌즈를 4K화질로 변환 중이다. 또 젊은 신인 감독과 오즈의 마법사를 재해석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개는 등장하지 않는다. (웃음) 오즈의 마법사 주인공 도로시가 성소수자의 영웅이 되는 등 다양한 문화에서 상징적 존재가 되고 있는데, 그 이유를 찾는 내용이다."
☞누렁이 보러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KBfSiE3m_4Q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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