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자유-민주 위해 反日… 지금 일본 비판은 뭘 위한 건가”[박훈 한국인이 본 일본사]
베스트셀러로 워싱턴서 유명해져
그러고 보면 1870년대는 훗날 한국의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수준 높게 건설해간 인물들이 무더기로 태어난 시기다. 그들의 선배들이 이끈 갑오개혁은 파격적인 근대화 정책으로 방향은 옳게 잡았으나, 청일전쟁의 와중이기도 해서 일본의 영향력하에 있었다. 그에 비해 이 ‘1870년대생’의 젊은 활동가들이 활약한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는 근대와 자주라는 시대적 방향을 제대로 체현한 세대로 주목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정신사에서 최양질(最良質)의 자산은 거의 이들에게서 발원했다.
美의 조미수호조약 파기 세게 질타
그는 개항 이후 한동안은 일본이 ‘한국 개화파의 친구’였다고 인정한다(30쪽). 사실 이런 인식은 김구의 ‘백범일지’에도,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에도 나온다. 그러므로 개항 이후 한국근대사의 좌절을 모두 일본 탓으로 돌리는 ‘일본 환원주의’는 수정되어야 한다. 당시를 살았던, 최고의 ‘반일투사’들이 한결같이 이런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그런 일본이 을사보호조약으로 한국 개화파들을 배신한 것을 시종일관 규탄하고, 미국이 그런 일본과 가쓰라-태프트밀약을 맺어 조미수호조약에서 한국에 무슨 일이 생길 때에는 중재권을 행사하겠다(use its good offices)고 했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을 집요하게 질타한다. 앞에서 말한 펄 벅 여사도 그 점에 반응했던 것이다.
反日 통해 가려는 지향점이 중요
이 책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드넓은 국제정치적 시야다. 특히 이 점에 관해서는 일본근대사 전문가인 내가 그동안 읽은 어느 책보다 훌륭하다. 도대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일본의 대륙 팽창이란 게 전 세계적인 측면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행위인지, 그리고 그것이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미국에 장차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그런 거대하고 장기적인 시야에서 한국 독립이란 게 어떤 인류사적 의미가 있는지를 웅장한 어조로 갈파한다. 포효에 가깝다. 아마도 그 어떤 한국인의 주장보다 국제사회 설득에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21세기 또다시 불끈거리는 지정학의 한복판에 서 있는 한국인들이 가져야 할 안목과 취향과 자세가 이 책에 있다.
군데군데 보이는 날카로운 지적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일본의 중국 침략이 반드시 실패할 이유로 두 가지를 들고 있는데, 하나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잠재해 있다가 이제 깨어나고 있는 중국인들의 애국정신을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일본군 앞에서 저항 한번 못 하고 흩어지는 중국인들을 조롱하는 분위기에서, 이승만은 중국 내셔널리즘의 발흥을 꿰뚫어 보고 있다. 또 하나는 일본이 한국 병합 때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완만하고 은밀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중국에 있는 서구 열강의 이권을 거칠게 침탈하고 있어 둘 사이의 대립이 초래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병합 당시 일본 지도층의 노회한 전략에 비해, 한없이 어설픈 군국주의자들의 전략을 비웃고 있다(58∼59쪽).
이승만은 이 책에서 격렬한 반일 민족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지만, 그저 일본이라서 증오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의 일본이 자유와 민주, 인권과 평화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다. 그가 ‘반일’을 통해 추구하려 했던 것은 자유와 민주였다. ‘반일’을 통해 전체주의나 공산주의로 가는 것은 그가 한사코 저지하고자 했던 길이다. ‘반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하려고 하는 반일인가’가 중요하다. 최대의 ‘반일’ 국가는 북한이지만, 이승만도 우리도 ‘반일’을 통해 그리로 가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박훈 서울대 역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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