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챙겨주는 마음[이재국의 우당탕탕]〈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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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학교 앞까지 딸을 태워다주는 편이다.
"비 오니까 우산 챙겨라!" 귀에 딱지가 앉도록 얘기해도 딸은 우산을 잘 챙기지 않는다.
어쩌면 내일도 비가 오고, 우리 딸은 또 우산을 안 챙길지도 모르지만 나는 기꺼이 새 우산을 챙겨 줄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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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삼삼오오 모여서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갔는데, 탄금대 앞에는 이미 많은 부모님들이 우산을 들고 서 계셨다. 아들, 딸 이름을 부르며 우산을 건네주시는 엄마 아빠들. 나는 목을 빼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우리 엄마는 그 자리에 안 계셨다. 나는 괜히 심통이 나서 한 시간 넘게 비를 맞으며 집까지 걸어왔다. 소풍 간다며 아침에 나간 아들이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집에 들어오니 엄마는 놀란 얼굴로 수건을 갖다주시며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셨다. “다른 엄마들은 다 우산 갖고 와서 기다리는데 엄마는 왜 안 왔어! 다른 애들은 다 우산 쓰고 집에 가는데 나만 우산 없어서 비 다 맞고 걸어왔잖아!” 나는 엄마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고는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대성통곡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모질게 말했나 싶은데, 그때는 나도 어렸고, 사춘기였고,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니었던 시절이었다. 그날 이후 엄마는 비 소식만 있으면 “비 오니까 우산 챙겨!”라는 말을 빼놓지 않으셨다.
나는 그 일이 그렇게 일단락된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가 나이가 드시고 흰머리 수북한 할머니가 되셨을 때 문득 그 얘기를 꺼내셨다. “나는 너한테 아직도 미안한 게 있어.” “미안한 거요?” “너 5학년 때 탄금대로 소풍 갔던 날, 갑자기 비가 내렸을 때 그때 엄마가 우산 못 갖다준 게 아직도 미안해.” “아휴, 그건 그냥 제가 어렸으니까 투정 부린 거죠.” 나는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냈는데 엄마는 이후에도 세 번을 더 말씀하셨다. “엄마는 너 5학년 때 소풍 가서 비 왔을 때 우산 못 갖다준 게 아직도 제일 미안해.”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건 돌아가시기 1년 전, 눈물샘이 말랐는지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는 눈으로 엄마는 또 말씀하셨다.
그때는 몰랐다. 부모 마음이 이런 거라는 걸. 그 작은 우산 하나 못 갖다주신 게 평생 마음에 남아 사과하시고 또 사과하시는 그 마음이 부모님 마음이라는 걸. 우산을 쓴다고 비를 안 맞는 건 아니다. 우산을 써도 바짓단은 다 젖고 신발도 젖는다. 그러나 쏟아지는 빗속에서 그 작은 우산이라도 하나 씌워주고 싶고, 한 평도 안 되는 그 작은 공간이 부모가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마음이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어쩌면 내일도 비가 오고, 우리 딸은 또 우산을 안 챙길지도 모르지만 나는 기꺼이 새 우산을 챙겨 줄 마음이 있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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