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같은 응급실 뺑뺑이는 없다[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리포트]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2023. 7. 20.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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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일본 도쿄 시부야구 일본적십자병원에서 한 관계자가 태블릿PC를 열어 인근 지역에서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원 현황을 보여주고 있다. 상황판 지도에 환자 상태에 맞춰 실시간으로 입원 가능한 병원과 의료진 상황이 적혀 있다. 도쿄=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한국 같은 응급실 ‘뺑뺑이’는 없다. 1시간 이내엔 응급 환자가 조치된다.”

18일 기자가 방문한 일본 도쿄 시부야구 일본적십자사 병원. 하야시 무네히로 응급의학과 센터장은 한국의 응급실 뺑뺑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워했다. 이곳 응급실은 연간 1만 명 이상의 경증, 중증 응급 환자들이 몰려드는 3차 응급의료센터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일본은 환자를 중증 응급 정도에 따라 분류해 중증 응급환자를 우선적으로 대응하는 ‘응급 트리아지(Triage·환자 분류)’가 잘 정립되어 있다. 응급환자는 응급 트리아지에 따라 1차(경증 환자), 2차(입원 진료가 필요한 환자), 3차(중증 응급 환자)로 분류한다. 1차에 해당되는 환자는 지역의 당번 의원급 응급실 등으로 이송된다. 2차는 입원실이 있는 병원급 의료기관, 3차는 대학병원급의 구명구급센터로 이송된다. 일본적십자사 같은 공공 의료기관은 3차 구명구급센터이지만 경증과 중증 환자를 함께 보기도 한다.

하야시 센터장에게 “정말 1시간 이내에 조치가 되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태블릿PC를 꺼내더니 화면 상황판에 적십자병원 주변 병원들을 클릭하고 응급질환과 관련된 과를 클릭했다. 그러자 환자 상태에 맞는 실시간 입원이 가능한 병상과 의료진 상황이 나타났다. 한국처럼 의사나 119 구급대원이 일일이 각 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걸면서 병원 상황이나 환자 수용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일본은 구급차 안에서도 구급대원들이 의료진과 긴밀하게 연락하고 태블릿 상황판을 통해 병원 수용 여부까지 실시간으로 신속하게 확인한다. 그 덕에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최대한 확보한다. 이러한 빠른 조치 때문에 일본에서는 통상적으로 40∼50분이면 환자 이송이 마무리된다.

과거에 일본도 한국처럼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발생하면서 대대적인 이슈가 됐다. 2008년 당시 도쿄의 한 중소병원에서 만삭의 임신부가 분만 중 의식이 저하되어서 이송하려고 도쿄 시내 대학병원 8곳에 연락을 했으나 받아주지 않아서 사망한 것이다. 취약한 응급의료체계가 사망 사고로 이어지자 일본 응급의학회에선 대대적인 성명서를 냈고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응급의료의 재구축을 위한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일본은 초기 캐나다의 응급의료체계(CTAS) 등을 벤치마킹하면서 필수의료인 일본응급의료체계(JTAS)를 잘 구축했다”면서 “즉 응급환자 이송과 배후 진료 체계를 확립했고 지금은 어떤 환자도 놓치지 않고 다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해당되는 3차 구명구급센터의 경우 환자가 임의로 갈 수 없고 반드시 1차 또는 2차 응급의료기관에서 진료를 한 의사의 소개서(진료의뢰서)가 있어야만 갈 수 있다. 또 가장 인상적인 것은 3차 구명구급센터로 중증 응급 환자의 이송 요청 시 ‘무조건 수락’하도록 돼 있다는 점이다.

특히 경증 환자의 응급실 과잉 사용을 막기 위해 일본은 경증 환자들이 응급실에 올 때는 7만 원가량의 사용 비용을 추가로 부담하게 한다. 한국은 주취자도 응급실에 거리낌없이 들어올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의식이 없는 주취자’만 응급실 입실이 가능하다.

일본 보건당국과 관련 학회는 응급실 이용에 대한 국민들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응급실 이용에 대한 홍보와 인식 개선에 주력했다. 국민들의 적극 협조 없이는 경증 환자들의 응급실 사용이 줄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최근에도 경기 용인시에서 교통사고로 70대 환자가 수술할 병원을 찾지 못해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결국 숨졌다. 10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는 가까운 대학병원급을 시작으로 병원 12곳을 수소문했지만 ‘병실이 없다’ ‘전문의가 없다’는 등 이유로 수술을 거부당했다. 결국 사고 현장에서 100km 떨어진 병원에서 수술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사고 발생 138분이 지난 뒤였고 환자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언제까지 구급차 뺑뺑이가 계속될 것인가? 응급의료기관은 책임감을 갖고 환자를 수용하고, 119 구급대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의료 지도하에 환자 중증도를 분류해서 실시간으로 이용 가능한 응급의료기관을 찾는 시스템 구축이 절실해 보인다. 학회와 정부는 ‘응급실은 정말 생명과 관련된 응급 환자들만 이용하는 곳’이라는 대국민 인식 개선에 힘써야 한다. 보건 당국은 이러한 응급 시스템이 잘 구축될 수 있도록 피나는 노력을 해야 될 것이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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