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우크라 전장에 등장한 `집속탄`, 책임은 누가 질 텐가
모폭탄 속 자폭탄 수백개, 최대 30%는 불발탄
토양에 떨어진 불발탄 어린이 등 민간인 살상
미 지원 우크라 사용하면, 러시아도 대응할 것
국제사회 비인도적 집속탄 사용말라 촉구해야
미국이 지원한 '악마의 무기' 집속탄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됐다. 세계가 퇴출하려 노력해왔으나 현실은 딴판인 셈이다. 집속탄 투입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더욱 잔혹해질 것으로 보인다. 피해는 고스란히 무고한 민간인 몫이 될 전망이다.
◇동맹국도 반대하는 '무차별 무기'
원래는 나쁜 의미를 갖지 않는 단어이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부정적 뜻으로 바뀔 수 있다. 영어 단어 'cluster'(클러스터)의 경우다. 사전은 그 의미를 (꽃, 과일 등의) 다발, (사람, 동물 등의)무리 등으로 설명한다.
지식경제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산업집적지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클러스터는 관련기업 및 기관들이 모여 있는 특정 지역이나 군집체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반도체 클러스터' '자동차 클러스터' 등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이 용어는 감염된 사람들의 그룹을 지칭하는데 사용됐다. 최근에는 치사력 높은 무기의 명칭으로 많이 회자되고 있다. 바로 집속탄(集束彈, cluster bomb)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군사지원으로 집속탄을 제공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CNN 인터뷰에서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다"면서 "우크라이나군의 포탄이 떨어져 가기 때문에 집속탄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다만 "영구적이 아니라 미국이 155mm 곡사포 포탄을 충분히 생산할 때까지만 지원할 방침이다"고 단서를 달았다.
그러자 독일, 스페인, 캐나다, 뉴질랜드 등 일부 서방 동맹국들조차 우려를 제기하며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미국 내부에서도 반대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현재 집속탄은 국제조약에 의해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지난 2010년 전세계 120개국은 집속탄 사용 및 제조, 보유, 이전을 금지하는 '유엔 집속탄에 관한 협약(CCM)'에 서명했다. 그러나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는 협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남·북한, 폴란드, 이스라엘도 국내 안보 및 대치 상황을 이유로 협약 서명을 거부하고 있다.
◇집속탄이 뭐길래
집속탄은 한 개의 '부모 폭탄' 속에 수백 개의 '자식 폭탄'을 채워 이를 흩뿌려 넓은 지역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무기다. 발사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비행기 투하형'과 대포 등에 의해 발사되는 '지상 발사형'이다.
미리 설정된 고도에서 모(母)폭탄이 열리면 그 속에 있는 수백개의 자(母)폭탄이 공중으로 흩어진다. 비처럼 쏟아져 '강철비'(Steel Rain)라고도 불린다. 넓게 분산되기 때문에 집속탄 1개의 타격 범위는 축구장 3개 면적과 비슷하다. 한 발이면 축구장 3개가 쑥대밭이 되는 것이다. 효율성이 큰 폭탄이라 2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의 전쟁에서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정량의 불발탄이 불가피한 것이다. 자탄은 단단한 땅이나 건물, 탱크 등에 떨어지면 폭발하지만, 부드러운 토양이나 지형에 떨어지면 폭발하지 않은 상태로 유지된다. 통상적으로 집속탄의 5~30%는 불발된다.
이러니 민간인들이 큰 피해를 입는다. 농부들은 농사 짓기 위해 흙을 파다가 사고를 당한다. 아이들은 폭탄인 줄도 모르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목숨을 잃는다. 국제시민단체인 핸디캡 인터내셔널의 조사에 따르면 집속탄 피해자의 98%가 민간인이고, 피해자의 3분의 1가량은 어린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지뢰'가 군인들만 타격할 리는 없다. 반세기 전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일어났던 일은 집속탄의 무차별 피해를 여실히 보여준다.
베트남 전쟁 때 미국은 북베트남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라오스, 북베트남, 캄보디아에 집속탄을 무차별 투하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는 라오스였다. 미군은 1964~1973년 약 2억7000만 발의 집속탄을 라오스에 쏟아부었다. 약 8000만 발이 불발탄으로 남아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금도 라오스에선 매년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장에서도 집속탄을 사용했었다. 2017년 미 의회는 불발률1% 이상인 집속탄의 생산·사용 및 이전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미국의 국가 이익에 부합된다면 무기 원조를 제공할 수 있다는 대외원조법 조항을 근거로 이번에 우크라이나에 집속탄을 보냈다.
미국은 불발률이 높은 집속탄들을 폐기하기를 원한다. 다시 말해, 미국이 이번에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집속탄은 폐기하려는 구식 폭탄이다. 집속탄의 '재고 정리'인 셈이다. 오래된 무기를 폐기하는 용도로 우크라이나를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미국은 현재 300만개 이상의 집속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군사전문지 밀리터리 닷컴에 따르면 미국은 상당수의 집속탄을 해외기지에 배치해 두었다. 이중 대부분이 한국에 있다고 보도했다.
◇'살인 교환'은 끝내야 한다
그동안 미국은 오랫동안 러시아의 집속탄 사용에 문제를 제기해 왔다. '전쟁 범죄'라고 비난해 왔었다. 그런데 되레 자신들이 집속탄을 지원했다. 탄약 부족으로 인한 절박한 조치라고 하지만, 자신이 하면 정당하고 남이 하면 나쁘다는 논리다.
그렇다고 집속탄이 전세를 역전시킬 비장의 카드가 될 가능성도 낮다. 의사였던 리처드 개틀링(1818∼1903)은 1분에 400발을 쏠 수 있는 자신의 기관총이 오히려 생명을 구할 것이라고 믿었다. 살상력이 큰 '개틀링 기관총'이 전쟁을 빨리 끝낼 것이고 이로 인해 수많은 인명을 구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의 믿음은 빗나갔다. 1차 세계대전에서 병사들은 비처럼 쏟아지는 기관총탄에 비참하게 죽었다. 전선은 시신들로 산을 이뤘다.
향후 러시아의 대응도 생각해봐야 한다. 탄약이 부족해진다면 러시아도 집속탄을 사용할 명분이 생긴다. 실제로 러시아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집속탄을 지원하면 이는 3차 세계대전을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우리도 집속탄을 쓸 것이고, 전술핵 카드까지 뽑아 들 수 있다'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집속탄은 여러 세대에 걸쳐 위협이 되는 비인도적 무기다. 다친 몸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민간인의 고통을 감안할 때 집속탄은 '악마의 무기'다. 만약 집속탄이 우크라이나 전장에 뿌려지면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적어도 100년 동안은 심각한 위험에 빠질 것이다. 전쟁의 죄악이다.
라오스의 비극이 이제 우크라이나에서 재연되려 한다. 전쟁의 아픈 유산이 반복돼선 안 된다. 세상에 인도적인 무기는 없지만, 무고한 인명의 희생을 초래하는 무기의 사용은 최대한 막아야 한다. 국제사회는 집속탄 사용 금지를 촉구해야 한다. 힘을 합쳐 '살인 교환'을 저지할 방법을 모색해야할 것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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