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 전략핵잠 부산 기항, 핵무기 사용조건 해당”
군사 행동 가능성, 핵 선제공격 ‘엄포’
‘핵 대 핵’ 구도 정립하고 도발 명분 축적
북한은 20일 미국 전략핵잠수함(SSBN)의 부산 기항을 두고 북한의 ‘핵무기 사용 조건’에 해당한다며 핵 무기 선제공격 가능성을 거론했다. 북한은 “군사력 사용은 미국과 대한민국에 있어서 가장 비참한 선택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순남 북한 국방상은 이날 밤 발표한 담화에서 “미 군부 측에 전략핵잠수함을 포함한 전략자산 전개의 가시성 증대가 우리 국가핵무력정책 법령에 밝혀진 핵무기 사용 조건에 해당될 수 있다는 데 대하여 상기시킨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밤 중에 담화를 낸 것은 시차를 고려해 미국 오전 시간에 맞춘 것으로 보인다.
강 국방상은 “(북한의) 핵사용 교리는 국가에 대한 핵무기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사용이 임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필요한 행동 절차 진행을 허용하고 있다”면서 “미군 측은 자기들의 전략자산이 너무도 위험한 수역에 들어왔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담화는 북한이 그동안 한·미 핵협의그룹(NCG) 첫 회의와 SSBN 방한을 앞두고 미국을 향해 반발해온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고 한·미 동맹 차원의 확장억제를 군사 도발의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특히 국방상 명의의 담화를 냄으로써 정말 군사적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위협 수준을 한껏 끌어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북한은 지난 18일 NCG 첫 회의에 맞춰 방한한 미 해군의 SSBN 켄터키함에 반발해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2발을 기습 발사했다. 미사일의 비행 거리는 550여㎞였는데 평양에서 부산까지의 거리에 의도적으로 맞춘 것으로 해석됐다.
강 국방상은 NCG 출범과 켄터키함의 부산 기항이 “가장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핵위협”이라면서 “미국의 대조선 핵공격 기도와 실행이 가시화, 체계화되는 가장 엄중한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조선반도에서의 군사적 격돌 국면은 온갖 가상과 추측의 한계선을 넘어 위험한 현실로 대두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국가의 ‘정권종말’을 입에 올리는 미국과 《대한민국》군부깡패 집단에 다시 한번 엄중히 경고한다”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군사력 사용은 미국과 《대한민국》에 있어서 자기의 존재 여부에 대하여 두 번 다시 생각할 여지조차 없는 가장 비참한 선택으로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력은 조선반도에서 핵을 사용하려는 미국과 그 졸개들의 미친 짓을 철저히 억제, 격퇴함으로써 국가의 주권과 영토완정, 근본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의 핵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자기의 중대한 사명을 책임적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처럼 꺽쇠(《》)와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한편으로는 남과 북이 두 개의 국가라는 인식을,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졸개’라는 조롱을 하기로 북한 내부에서 합의를 거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양 교수는 다만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은 적다고 봤다. 그는 “미 핵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에 대해 핵으로 대응할 명분을 축적하려는 의도”라며 “향후 한·미 확장억제 강화에 대응해 강 대 강, 핵 대 핵의 구도를 정립하려는 의도로도 보인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난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력 사용 정책을 법제화하면서 미국이나 남한을 겨냥해 핵 선제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당시 북한은 핵무기의 사용조건으로 ‘핵무기 또는 기타 대량살상무기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가의 존립과 인민의 생명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핵무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 등으로 규정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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