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자, 살아서 2시간 넘게 구조 기다렸다”
통화량 폭주에 119 연결 지연
인접 안전센터들 타지 출동
27㎞ 밖 센터가 세번째 접수
도로 잠겨 지체…결국 숨져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매몰사고 피해자가 신고 후 2시간 가까이 살아 있었으나 구조대원이 제때 도착하지 않아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재난상황에서 소방시스템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지난 15일 집중호우로 발생한 이 지역 산사태와 관련해 소방당국은 오전 5시 춘양면에 매몰사고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앞서 오전 4시25분쯤 춘양면 면장은 “소나무가 쓰러져 길이 막혔다”는 신고를 받고 마을 이장에게 현장에 내려가달라고 부탁했다. 이장은 무너진 집 사이로 매몰된 남녀 2명을 발견해 119에 즉시 신고했다. 그러나 통화량이 많아 30분이 지난 오전 5시가 되어서야 신고가 접수됐다.
구급대원은 2시간45분이 지난 오전 7시45분에서야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출동기록에 따르면 첫 출동 명령은 차로 10분 거리인 춘양 119안전센터에 떨어졌다. 그러나 춘양 119안전센터의 차량과 소방대원들은 오전 3시40분부터 다른 지역에서 작업 중이어서 출동하지 못했다.
두 번째 출동 명령은 명호 119안전센터로 접수됐다. 이곳의 구급대원들 역시 다른 현장에 출동한 상태였다. 결국 27㎞ 떨어진 재산 119지역대가 사고 현장에 투입됐다. 춘양면이 작성한 재난상황 보고서에도 ‘춘양 119안전센터 구급차 공백, 명호·재산 구급차 심정지 환자 이송’이라고 적혀 있다.
평소 차로 35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도로 곳곳이 물에 잠겨 출동이 늦어졌다는 게 소방당국의 설명이다. 봉화소방서 관계자는 “명호·재산·춘양 안전센터 구급차뿐만 아니라 울진에 있는 구급차, 불 끄는 차까지 투입했다”면서 “다른 수해 현장에 다 출동한 상태라서 매몰사고 현장으로 바로 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우선순위를 판단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엔 “동시다발적으로 신고가 들어와 판단할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다.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에 공조를 요청하는 시스템도 마비됐다. 이 시스템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최초 신고 접수 내용이 자동으로 경찰에 통보된다. 경찰 관계자는 “(15일) 오전 8시20분쯤 봉화소방서 상황실에 비 피해 상황을 물어보는 과정에서 (사망사건을) 최초 인지하게 됐다”며 “파출소 직원이 현장에 출동했을 땐 이미 사망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출동이 지체되는 사이 피해자들은 서서히 숨을 거뒀다. 주민들은 매몰자 중 한 명은 오전 7시까지도 살아 있었다고 증언했다. 주민 A씨는 “남자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여자는 아침까지도 손을 만지면 움직였다”며 “소방차가 계속 못 오니까 체온이 떨어질까 걱정돼 비닐을 덮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마을 이장 역시 유족들에게 “오전까지 살아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구급대원이 도착했을 땐 두 사람 모두 사망해 주민들이 도로에 시신을 수습해놓은 상태였다고 한다.
재난상황에서 119신고 전화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통화량이 일시적으로 폭주하면 ARS로 넘어가게끔 되어 있다”면서 “종합상황실, 일반 행정 전화, 인근 소방서까지 모두 통화 중이면 신고자는 녹음된 안내 메시지를 들으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홍근·김현수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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