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학부모들의 ‘을’이 아닙니다
6학년 학생의 담임 폭행 이어
20대 2년차 교사 극단선택까지
“악성 민원에 무분별하게 노출”
교사들 분노…근본 대책 촉구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내에서 2년차 20대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악성 민원’에 대한 교직사회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온라인상에 떠돌던 일부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음에도 상당수 교사가 공분하는 것은 실제로 교사들이 악성 민원으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초등학교 6학년생이 담임교사를 폭행한 사건에 이어 이번에 교사가 숨지는 일까지 발생하면서 교육당국이 더 늦기 전에 근본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초등교사의 극단적 선택이 19일 알려진 뒤 교사사회는 분노로 들끓었다. 20일 사건이 일어난 초등학교와 서울시교육청 앞에는 전국 각지의 교사들이 보낸 근조화환 수백개가 줄지어 섰다. 일부 교사들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검은색 추모 리본으로 바꾸는 운동도 벌였다. 교사들이 소속 단체를 가리지 않고 단일 사건에 대해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교사노동조합 등 교원단체들은 이날 잇따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과 추모제를 열었다.
아직 이번 사건의 원인 등은 파악되지 않았다. 다만 복수의 교원단체는 해당 교사가 사망 전 몇몇 학부모 때문에 괴로워했다는 동료 교사들의 증언이 있었다고 전했다. 사망한 교사가 학교폭력 업무를 맡으며 학부모와 갈등을 겪은 끝에 교육청에 불려갔고, 담당 학급 담임이 학부모 민원으로 교체됐다는 등의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교사들은 이런 의혹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악성 민원이 현장에 만연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입을 모은다. 학교의 특성상 담임교사가 학부모를 1 대 1로 대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일부의 악성 민원에 교사가 무분별하게 노출된다는 것이다.
일부 학부모 ‘아동 학대 신고’ 악용…교사는 홀로 전전긍긍
교사 93% “지도 중 학대 신고 두려워”…27% 정신과 치료도
전교조 “개인이 감당하는 스트레스, 전쟁 시 간호사와 같아”
법적 보호 수단도 약해…‘교권 침해 조치’ 실질적 마련 시급
초등학교 평교사 출신인 정성국 교총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학부모와의 상담·민원을 담임이 모두 감당하는 구조에서 교사들은 ‘우리 반 문제는 내가 해결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지만 일부 학부모는 불리해지면 태도가 돌변해 협박이나 괴롭힘을 가하는 일들이 무수히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등 갈등 사안을 중재하는 과정에서 불만이 있는 학부모가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등 아동학대방지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 현장 교사들의 전언이다. 전교조가 지난해 9월 교사 624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2.9%는 학생 지도 과정에서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두려워한다고 답했다. 학생의 문제행동이나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제기를 혼자 해결해야 하는 교사들은 교단을 떠나고 있다. 권은희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1년간 퇴직한 전국 국공립 초·중·고 교원 중 근속연수 5년 미만은 589명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303명)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 5월 교사노조 설문조사에서는 교사 87%가 최근 1년 사이 사직이나 이직을 고민했고, 26.6%가 최근 5년간 교권침해 사안으로 정신과 치료·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전교조는 이날 성명에서 “학교 안팎의 수많은 요구와 갈등 한가운데서 교사들이 겪는 감정적, 정서적 스트레스는 전쟁 시 병동 간호사에 비유될 정도”라고 밝혔다.
교사들이 감당해야 하는 일에 비해 법적 보호 수단은 부족하다. ‘교원의 지위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에는 교육활동 침해 학생에 대해 출석정지·학급교체·전학·퇴학 등 조치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명시돼 있지만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제재할 수단으로는 미흡하다. 학부모가 폭언·폭행 등을 했을 때는 담당 시·도교육청이 수사기관에 고발하도록 돼 있지만, 2019~2021년 접수된 교권침해 사건 6128건 중 교육청이 형사고발한 사례는 14건에 불과했다. 교총은 “무분별한 민원과 아동학대 신고에 대해 응당한 책임을 묻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교육부는 교원이 교권침해에 대응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지도·제재·조치 방법을 명시한 장관 고시를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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