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샌프란시스코의 기억
1967년 여름, 히피 차림의 젊은이들이 하나둘 샌프란시스코에 모여들었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고 자유 연애, 대마초를 추앙하는 이들이었다. 수 만 명이 기성 질서에 반기를 들었다. 문학, 그림, 음악, 명상을 얘기하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머리를 꽃으로 장식한 ‘꽃의 아이들’이 시선을 끌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으로 불린 이 집회는 미국 문화사에 중요한 이정표로 기록됐다. 가톨릭의 성인 이름을 딴 샌프란시스코가 자유와 보헤미안 중심지가 됐다.
▶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이 가사로 유명한 노래 ‘샌프란시스코’는 서머 오브 러브의 주제곡이었다. 자신들의 신(新)문화에 동참하는 의미로 꽃을 꽂으라는 이 노래는 히피 세대의 감성을 대변한다. 아름다운 항구도시의 대표적인 노래가 됐다. 70~80년대 미국을 동경하던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자주 불렸다.
▶금문교, 피셔맨스 워프, 차이나 타운, 버널 하이츠를 찾고 사워도우 브레드를 먹은 이들은 모두 샌프란시스코 팬이 된다. 영국의 유명 시인 딜런 토마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나는 미치도록 불행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다음 세계의 매력을 가진 곳”이라고 했다. 한여름에도 의외로 추워서 많은 관광객이 당황한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내가 보낸 가장 추운 겨울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낸 여름”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고, 부유한 도시로 꼽혔던 이 도시가 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고담 시티’가 됐다고 한다. 마약, 총기 사고, 폭력, 절도 등 강력 범죄가 빈발해 범죄지수는 캘리포니아주 평균의 10배를 넘는다. 본지 특파원은 “바로 눈앞에서 도둑들이 태연히 자동차 문을 따고 옷과 가방을 훔친 후 웃으며 사라졌다”고 했다. 이 도시의 상징이었던 자유가 방종으로 흐르면서 ‘파멸의 고리’에 갇혀 버린 것일까.
▶러시아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 이반 부닌의 작품 중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가 있다. 부유한 신사가 호화 유람선에서 먹고 마시고 향락에 빠졌다가 갑자기 사망해 같은 배의 맨 아래 실려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절제를 잃고 추한 도시가 돼 버린 샌프란시스코의 운명을 예견한 듯하다. 샌프란시스코를 찾았던 이들이 씁쓸한 뉴스를 들을 때 생각날 노래가 있을 것 같다. ‘내 마음은 샌프란시스코에’(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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