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위장수사 명암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인터넷상에서는 영화 <극한직업>에서 볼 법한 경찰의 위장수사가 하루 24시간 이어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59명의 경찰관이 디지털 성착취물 구매자나 판매자로 위장해 범인에게 접근하고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 범인이 신분 확인을 요구하면 가짜 학생증이나 사원증을 보여주고, 계좌로 돈을 보내기도 한다.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성범죄 수사 시스템 가운데 하나다.
위장수사는 일종의 함정수사다. 수사의 신의칙(信義則)과 상당성에 반하고 인권침해 소지가 있어 청소년성보호법상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에 한해서만 허용되고 있다. 경찰청은 2021년 9월부터 지난달까지 350건의 위장수사를 벌여 디지털 성범죄자 705명을 검거해 56명을 구속했다고 20일 밝혔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시청자만 100명 넘게 잡았다. 비밀스럽게 유지되던 n번방 같은 곳이 위장수사로 무너졌고 관련자들은 일망타진됐다. 검거 대비 구속 비율이 낮은 것은 미성년자가 많고 검찰 단계에서 기소유예 처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경찰청은 성착취물 공급·수요 자체가 1~2년 새 크게 줄었다고 자평했다.
아동·청소년 성범죄를 척결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성범죄 위장수사도 인권이 우선이다. 열 명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범죄 적발에는 효과적이지만 위장수사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피의자에게 접근하기 위해 경찰이 위장 신분으로 성착취물을 구매·판매할 수 있는 수사 매뉴얼은 과연 정당한가. 당초 전혀 생각이 없었는데 신분을 위장한 경찰이 충동질하는 바람에 성착취물을 구매했다면 이를 처벌할 수 있는가. 위장수사 과잉과 수사 대상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수사는 결과와 과정 모두 합법적이어야 한다. 범인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술(詐術)을 쓰면 부작용이 따른다. 수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사회 구성원들이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수단이다. 위장수사는 필요악이다. 위장수사가 인권을 훼손하고 오·남용되지 않도록 감독과 통제도 강화돼야 한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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