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의 '그런데'] 아이들 키에 혈세가 웬 말
1860년 미국 대선 때, 노예제 못지않게 사람들의 관심을 끈 건 공화당 링컨 후보와 맞상대인 민주당 후보 스티븐 더글러스의 키 논쟁이었습니다.
링컨은 190cm가 넘는 장신이었지만 더글러스는 160cm대 정도였는데, 일부에선 "어림도 없다. 152cm도 안 될 거다"라는 말이 나왔거든요.
그런데, 링컨은 '적당한 키는 어느 정도인가'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키는 다리의 길고 짧음에 달려 있고, 다리 길이는 땅에서 몸통까지 닿을 만큼만 길면 적당하다."
자신의 키를 자랑하지도 않고 상대에 대한 배려도 묻어나는, 링컨다운 답변이죠.
대전시 의회가 학생들의 키 성장을 지원하겠다고 합니다. 지난 6일 대전시의회 소속 김영삼 의원 등 14명이 내놓은 조례안엔 대전시 교육감이 초등학생 성장판 검사비 지원, 키 성장 맞춤형 급식이나 운동 프로그램 개발, 운영을 위해 필요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했죠.
'대전 학생 평균 키를 5cm 더 높이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오전, 진짜로 대전시의회는 '대전시교육청 학생 키 성장 지원 조례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조례안은 오는 24일 본회의에서 심의, 의결된 후 공포됩니다.
그런데 저들이 이걸 알까요. 우리 아이들 중엔 키를 키우기 위해 뭘 먹을까가 아닌, 살기 위해 뭐든 먹어야 하는 아이들도 있다는 사실이요. 아동급식카드를 들고 정해진 가맹점에 들어가 정해진 가격, 한 끼 8천 원 정도에서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아이들이요.
게다가, 시의회가 다양성을 인정하긴커녕 획일적 외모 중심주의를 부추기고, 키가 큰 사람의 가치가 더 높은 것처럼 만들다니요.
또 초등학생 성장판 검사에만 1인당 5만 원씩, 매년 37억 원이 드는 건 어디서 충당할 건가요. 돈은 있다고요? 그럼 그 돈으로 아이들 급식카드 금액을 좀 높이는 건 어떨까요.
아이들의 키 문제는 부모의 큰 관심거리라는 건 맞습니다만, 그런 심리를 이용해 시민 권력을 대표한다는 지방의회가 얄팍한 포퓰리즘 발상을 하다니요.
국민 혈세까지 투입해 성장판을 억지로 자극하고 키를 키워야 하는 게 정치권과 사회의 몫이 되고, 표준으로 자리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링컨의 아량은 도대체 어디서 배우란 말입니까.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아이들 키에 혈세가 웬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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