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밀려든다...미중 갈등이 ‘좋아서’ 비명 지르는 나라

안중현 기자 2023. 7. 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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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기업 투자 모두 몰려들어, 페소화 가치 8년 사이 최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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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타이 메사에 멕시코로부터 미국으로 화물을 실어 나르는 트럭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과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을 노려 멕시코 투자를 늘리는 글로벌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물류량이 대폭 늘었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

올리버 블루메 독일 폴크스바겐그룹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8일 멕시코시티 동쪽 외곽에 있는 푸에블라주를 방문해 세르지오 세스페데스 주지사와 투자를 논의했다. 폴크스바겐그룹은 프리미엄 브랜드 아우디의 전기차 공장을 이곳에 지을 계획이다. 지난해 폴크스바겐그룹이 향후 5년간 북미에서 70억달러(8조8000억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만큼 대규모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잇따라 멕시코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소비 시장과 가까운 곳에 공장을 짓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이 세계 산업계의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을 이웃으로 둔 멕시코가 각광받고 있다.

멕시코에 투자가 밀려드는 건 국제 정세 변화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국으로 생산시설을 옮기는 ‘리쇼어링(reshoring)’ 붐이 이어지다가 미·중 갈등이 본격화되자 무게추가 니어쇼어링으로 옮겨지고 있다. 특히 미국 정부가 북미를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니어쇼어링이 가속화되고 있고, 인건비가 저렴한 멕시코가 수혜를 톡톡히 받고 있다.

그래픽=김의균

외국인 투자 올해 22% 늘어날 듯

멕시코에 들어오는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2020년 282억달러, 2021년 315억달러에 이어 작년에는 353억달러로 늘었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올해는 FDI가 작년보다 22%가량 증가한 43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 1분기에만 186억달러가 들어왔다.

멕시코에 쏟아지는 외국인 투자 중 미국의 비율은 절반에 가까운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기업들이 니어쇼어링 과정에서 미국과 맞붙어 있어 물류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멕시코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에서 물품을 생산해 미국으로 공급하는 물류망이 팬데믹 기간 동안 큰 혼란을 겪은 데다 운송 비용이 급등하자 기업들이 멕시코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고 했다.

월마트는 지난해 직원 유니폼 5만여 벌이 필요해지자 그간 하청을 줬던 중국 업체 대신 ‘프레스로’라는 멕시코 의류업체를 아예 사들여 해결했다. 바비 인형 제작사인 글로벌 완구업체 마텔은 지난해 멕시코 누에보레온주 공장을 확장했다. 이 공장은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마텔의 다른 공장을 제치고 마텔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장이 됐다. 가브리엘 갤밴 마텔 전무는 “소비자와 가까운 곳에서 생산할 수 있고 아시아에서 제품을 운송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수익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대거 멕시코에 자리 잡으면서 미국에서 멕시코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내륙항구인 텍사스주 러레이도항의 물류량이 대폭 늘었다. 지난해 러레이도항을 지나간 물류트럭은 554만여 대로 2020년(457만여 대)에 비해 20% 늘었다. 러레이도에서 창고업을 하는 사업가 파블로 가르자씨는 뉴욕타임스(NYT)에 “창고가 꽉 차서 고객들의 요청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을 정도”라고 전했다.

요즘 멕시코는 자본시장마저 활황기를 맞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모닝스타에 따르면 미국 증시에 상장한 멕시코 상장지수펀드(ETF)에 올해 순유입된 글로벌 자금은 50억달러(약 6조원)에 이른다. 달러를 중심으로 외화 유입이 크게 늘면서 페소화 가치는 최근 8년 사이 최고치로 치솟았다.

그래픽=김의균

미·중 갈등에 즐거운 비명

멕시코는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생산 거점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지난 2월 테슬라는 50억달러(약 6조3000억원), BMW는 8억유로(약 1조1000억원)를 투자해 멕시코에 각각 전기차 공장을 짓기로 했다. 제네럴모터스(GM)와 포드, 기아 등도 멕시코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투자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는 건 미국 정부가 중국을 견제하며 북미 지역을 전기차 생산 중심지로 만들려는 전략을 가동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발효된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전기차가 최대 7500달러(약 990만원)에 이르는 보조금을 받기 위해선 북미(미국·캐나다·멕시코)에서 최종 조립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은 멕시코에 공장을 지어도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인건비가 훨씬 저렴한 멕시코로 몰려들고 있다. 올해 멕시코의 시간당 최저 임금은 1.4달러로 미국(7.25달러)과 캐나다(12.2달러)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중국(3.13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 수위를 높이자 중국 기업들마저 멕시코로 몰려드는 현상도 나타난다.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자, 멕시코에 공장을 짓는 방식으로 미국의 무역 규제를 우회하는 것이다. 멕시코에서 생산한 물품은 ‘미국·캐나다·멕시코무역협정(USMCA)’ 덕분에 미국에 수출할 때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전기차 모터에 들어가는 자석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 JL매그는 테슬라 기가팩토리가 들어설 멕시코 몬테레이에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자동차 부품업체 닝보쉬성그룹도 알루미늄 합금 공장을 멕시코에 짓기로 했다. 중국 매체 ‘더차이나프로젝트’에 따르면 최소 26개의 중국 전기차 부품 회사가 멕시코에 이미 진출했거나 진출할 계획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멕시코가 니어쇼어링으로 인한 이익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인프라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다니엘 자가 딜로이트 중남미 경제 분석 책임자는 “멕시코는 전기 및 수도 공급 문제를 해결하고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니어쇼어링이 준 기회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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