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 미군, 5월부터 JSA 견학 예약…항공사 직원 인도로 공항서 나와(상보)
가족들 "사촌동생 사망에 충격…조용한 외톨이"
(서울=뉴스1) 박재하 강민경 기자 = 미국 송환을 앞두고 항공기 탑승하려던 주한미군 트래비스 킹 이병(23)이 어떻게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북한으로 넘어갔는지 당시 상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한국 매체들을 인용, 킹 이병이 지난 17일 인천공항 탑승 게이트까지 갔지만 여권이 없다는 이유로 다시 돌아왔다고 20일 보도했다. 또 심지어 그가 폭행 등 혐의로 수감되기 전인 지난 5월부터 JSA 견학을 예약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하루 뒤인 18일 판문점에서 킹 이병은 북측 판문각에 들어갔려 했으나 문이 잠겨 실패했고, 그 뒤편에 있던 북한 군용 차량에 태워져 이름모를 장소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미군을 관할하는 미 인도태평양사령부의 존 아킬리노 사령관은 최근 한 안보포럼에 참석해 "킹은 JSA 비무장지대를 가로질러 도망쳐 북한군에 의해 붙잡혔으며, 지금까지 관련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미국행 비행기 탑승 안해…"여권 분실" 핑계로 다시 공항 빠져나와
킹 이병은 지난해 10월8일 오전 3시46분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클럽 직원 2명을 폭행한 혐의로 현행범 체포돼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같은해 9월25일 마포구 홍대 인근 클럼에서 술을 마시다 한국인 손님의 얼굴을 수차례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지만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아 공소기각됐다.
그는 벌금 납부 대신 천안교도소에서 47일간 노역장에 유치됐다. 이후 지난 7월 10일 풀려나 평택에 있는 캠프 험프리스로 복귀했다.
그는 미군 신분이 사실상 박탈될 예정이었으며 모부대인 미국 텍사스주 포트블리스로 보내져 추가 징계 절차를 밟을 예정이었다.
인천공항으로 미군이 킹 이병과 동행했지만 세관을 혼자 통과해야 했다. 이후 킹 이병은 그를 인도했던 미군에게 출국장에 도착했다고 문자를 보냈다.
로이터통신은 한국 매체 보도를 인용, 킹 이병은 지난 17일 오후 6시17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로 가는 아메리칸항공 탑승 게이트까지 갔지만 "여권을 분실했다"는 핑계로 탑승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당초 이 비행기는 오후 5시40분 이륙 예정이었지만 약 한 시간 늦게 출발했다. 연착 사유가 킹 이병이 탑승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던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 인천공항 관계자는 킹 이병이 이후 한국 법무부 관계자 승인을 받은 항공사 직원의 인솔에 따라 오후 7시쯤 출국장을 빠져나온 모습이 목격됐다고 로이터에 전했다.
그가 공항에서 나온 이후 서울로 어떻게 돌아갔는지, 어디서 머물렀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5월부터 JSA 견학 예약…'하하하' 웃으며 질주
공항을 빠져나온 킹 이병은 다음날에 민간인 신분으로 위장해 JSA 견학에 참여했다.
왜 JSA에 간 것인지 구체적인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어느 정도 계획된 행동일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JSA 투어를 위해서라면 72시간 이전에 예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CNN에 따르면 한 미국 관리는 인천공항에 있는 DMZ 민간인 투어 광고를 목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아직 이 사건의 초기 단계에 있기 때문에 아직 파악해야 할 것들이 많다"며 "(킹 이병은) 고의적으로 허가 없이 군사분계선을 넘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온라인 매체 '더메신저(The Messenger)'는 킹 이병 사건과 관련한 미군 보고서를 인용해 그가 구금되기 전인 지난 5월 비무장지대(DMZ) 투어 상품 2개를 예약했다고 보도했다.
이중 한국 여행사가 운영하는 상품은 확정됐다. 이 투어는 약 10시간 정도 진행되며 가격은 180달러(약 23만원)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40명으로 제한된 이 투어는 지난 18일 오전 8시 남대문시장에서 시작됐다. JSA를 방문 시에는 여권이나 신분증 등을 미리 제출해야 했으며 킹 이병은 미국 신분증을 냈다.
JSA 견학 현장에 나타난 킹 이병은 갑자기 군사분계선을 향해 달렸고 뒤쫓던 투어 가이드들은 그를 잡지 못했다.
킹 이병과 함께 견학에 참여한 남성은 미국 CBS에 "이 남자가 큰 소리로 '하하하' 웃더니 사람들을 지나쳐 건물 사이로 뛰어갔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판문점에는 남측 '자유의 집'과 북측 '판문각'이 군사분계선을 앞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그리고 군사분계선에는 군사정전위 회의 등을 위해 설치된 가건물 7개가 나란히 있는데 파란색 건물 4동은 유엔군이 회색 3개 동은 북측이 관리한다.
킹 이병은 이 가건물들 사이로 달려가 군사분계선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CNN에 따르면 한 미국 관리는 결국 군사분계선을 넘은 킹 이병이 JSA 내 북한 시설인 판문각에 진입을 시도했으나 정문이 잠겨 실패했다.
결국 그는 판문각 건물 뒤쪽으로 달려갔고, 그곳에 세워져 있던 북한군 승합차에 올라탔다. 차를 운전하는 북한 병사들은 그를 데리고 어딘가로 떠나갔다.
한국 측 군인이 도망가는 그를 향해 "잡아!" 하고 소리쳤으나 이미 너무 늦었다. 한 목격자는 "그가 너무 빨리 달려가고 있었고, (남북한의) 국경이 너무 가까워서 그는 이미 사라지고 난 이후였다"고 말했다.
◇"틱톡 영상 찍는 줄"…어이 없었던 목격자들
월북 당시 목격자는 "처음에는 철없는 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돌아오지 않자 진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모두가 그제야 반응했고 상황이 미쳐 돌아갔다"고 회상했다.
또 킹 이병이 달려간 곳에 북한 군인들은 없었다며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이들이 한번도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전했다.
목격자인 뉴질랜드 관광객 사라 레슬리는 뉴질랜드 원뉴스(1News)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갑자기 북한 쪽을 향해 전속력(full gas)으로 달리는 것을 봤다"며 "그가 군인인 줄도 몰랐고 '틱톡' 영상을 찍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든 생각은 '정말 바보 같다'였다"며 "근데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고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전했다.
월북이 일어난 직후 함께 관광에 나섰던 사람들은 진술을 받기 위해 판문점 남측 건물인 '자유의 집'을 거쳐 버스로 이동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상황이 너무 충격적이었다"며 "한 검문소를 지나가면서 누군가 '43명이 들어갔다 42명이 나왔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사촌동생 사망 때문에 충격? 아직도 킹 이병의 월북 동기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킹의 어머니 클로딘 게이츠는 ABC뉴스 인터뷰에서 "트래비스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며 충격적인 심경을 드러냈다.
가족 문제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킹 이병의 외삼촌 칼 게이츠는 데일리비스트 인터뷰에서 자신의 아들이자 킹 이병의 이종사촌이 7세의 어린 나이로 안타깝게 숨졌을 때 그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게이츠는 자신의 아들이 지난 2월 말 희귀 유전 질환으로 사망했으며 숨지기 직전까지 생명 유지 장치를 달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트래비스는 내 아들이 죽으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난폭해지고 미쳐가기 시작했다"며 "이는 그가 한 일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고 말했다.
킹 이병의 가족들은 그를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성경 읽기를 좋아하는 조용한 외톨이로 묘사했다. 특히 미국 위스콘신주 남동부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킹 이병은 한국에 배치될 생각에 매우 들떠 있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정찰병이 민감한 정보 가지고 있지 않을 것" 정찰병이었던 킹 이병이 북한 정부가 쓸만 한 정보를 가지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월북 병사는) 상당히 낮은 계급이지만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어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킹 이병이 북한에 공유할 수 있는 잠재적인 정보는 전쟁 계획이나 전투 배치 세부 사항처럼 민감한 정보는 아닐 것이라면서 "그래도 이는 짜증나며 당혹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오스트리아 빈에 본사를 둔 연구그룹 오픈뉴클리어네트워크의 이민영 수석 분석관은 북한이 킹 이병의 억류 사실을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따라 북한이 어떤 계획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때 미국 정부에서 북한 분석관으로 일했던 이씨는 "북한은 킹 이병을 미국에 환멸을 느끼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망명한 미군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며 "북한이 이를 좋은 선전 기회로 여기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려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jaeha6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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