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위기 소아암 치료, 해법은?…"수가 손질·파격지원 필요"
의료행위별 아닌 지역별·기관별 수가보상 필요
가족 돌봄 부담 덜 쉼터 마련 등 실질 대책 필요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소아청소년암 진료체계 붕괴를 막기 위해 지역의 의료진이 순환근무·협진 등을 통해 진료 부담을 나누고 진료의 연속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수가(진료비)를 의료행위별이 아닌 지역별·기관별로 보상해주고, 환자 가족의 돌봄 부담을 덜 수 있는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소아청소년암 필수진료체계 구축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20일 오후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주관으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렸다.
국내 소아청소년암 완치율은 약 85%에 달할 정도로 의료 수준은 높다. 하지만 고강도, 고난이도, 고위험 의료서비스의 특성과 최근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 급감으로 소아청소년암을 진료하는 의료진도 크게 줄고 있다.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는 현재 전국에 69명 밖에 남지 않았다. 소아청소년암은 성인암에 비해 의료인력 투입량은 많은 반면 수가는 낮아 진료를 지속하려는 병원도 줄고 있다.
현장의 의료진들은 의료인력이 부족한 데다 충원도 어려워 진료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면서 환자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백희조 화순전남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호남 지역인 광주, 전북, 전남에서 조혈모세포이식이 가능한 병원은 이달 기준 호남 지역 5개 대학병원 중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를 3명 보유한 화순전남대병원이 유일한데, 이 병원조차 소아과 전공의는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부산·울산·경남 지역과 대전·충청·세종 지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부울경에는 이달 기준 9개 병원 중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2명 있는 양산부산대병원이 유일하게 입원과 외래진료, 조혈모세포 이식이 모두 가능하다. 대전·충청·세종의 경우 9개 병원 중 충남대병원만 조혈모세포 이식이 가능한 상태인데, 소아과 전공의는 '0'명이다. 또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있는 5개 병원 중 2개 병원에서 전문의가 퇴임을 앞두고 있다.
백 교수는 "의료인력 부족으로 담당자가 출장을 가거나 병가 등으로 부재 시 진료공백이 생기고 있고, 촉탁의(전담의)나 입원전담전문의는 1년 단위로 계약이 이뤄져 인력 충원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환자가 안전을 위협받고 진료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김지윤 칠곡경북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도 "응급실 진료가 축소 또는 어려워지면서 입원진료도 줄고 있다"면서 "소아청소년 응급실 진료가 가능한 곳은 대구·경북에서 칠곡경북대병원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아혈액암 자체가 중증도가 높고 고위험 진료여서 민원, 소송 등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의사를 뽑기도 어려워 지역 의료체계 붕괴가 임박했다"고 했다.
특히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인력과 의료 인프라 마저도 수도권 내 병원에 집중돼 있어 지방에 거주하는 소아청소년암 환자는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대처가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 서울 이외의 지역의 평균 70%의 환자가 거주지를 떠나 치료를 받으면서 수도권 쏠림 현상과 가족 해체 문제도 심각하다.
급성림프모구백혈병 진단을 받은 4살 딸 예설이 엄마라고 밝힌 황미옥씨는 "예측할 수 없는 응급상황을 맞닥뜨리는 것이 가장 어렵다"면서 "소아암 환자들이 집 근처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소아암 평균 치료기간이 3년인데, 양산부산대병원이 문을 닫게 되면 수도권으로 전원해야 한다"면서 "지방의 부모들이 수도권에서 임시로 숙박할 곳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아 병원 근처 쉼터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황씨의 얘기에 귀 기울이던 임연정 충남대병원 부교수는 "병원에 두고 온 환자가 생각났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러면서 "지난해부터 전공의가 없다 보니 365일 응급콜을 받고 있는데, 지난주 생후 16개월된 골수백혈병 영아가 상태가 중해 3일간 7명의 의사를 만나야 했다"고 떠올렸다. 또 "조혈모 세포 이식이 필요한데 아이가 10kg밖에 안돼 서울로 가시라고 권했다. 그런데 부모가 집을 구하는 것부터 해서 쌍둥이 형제를 어떻게 돌볼지 걱정이 많더라"며 안타까워했다.
소아청소년암 의료체계 붕괴를 막을 대안으로 소아청소년암 '권역별 거점병원' 운영과 지역 내 의료진 협진 체계를 구축하는 '개방형 진료체계' 구축이 제시됐다.
백 교수는 "거점병원을 운영하려면 소아혈액종양 세부 전문의 2명, 전담의 2~3명, 소아과 타분과 전문의 4~6명 등 최소 8명의 의사가 필요하다"면서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진료지원 인력도 담당간호사 2명, 약사 0.5명, 영양사 0.5명, 사회복지사 1명 등 최소 4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역 의료체계 붕괴가 임박해 환자들이 난민처럼 유랑하고 있고 진료대기 등으로 보호자의 동요도 큰 상태"라면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처럼 연합의 필요성을 절감해 지역의 전문의들이 협업하기로 결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계명대병원 세부 전문의 교수, 영남대병원 세부 전문의 교수, 포항성모병원 전문의 과장, 지역 병원장들이 의견을 모은 상태"라면서 "사업비와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지역 전문의 이탈을 막고 지역 환자들에게 안정적인 의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가 체계를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행위별 수가체계(의료행위별로 가격을 책정해 진료비를 지불하는 제도)에서 벗어나 지역별·기관별로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의료비 부담을 줄이면서 보장률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필요도가 높지만 공급 자체가 부족한 필수의료가 붕괴 위기를 맞은 것"이라면서 "행위별 수가제로 소아암의 경우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건강보험법을 바꿔 기관별, 지역별로 소아청소년암 환자를 집중적으로 보상하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아청소년암 환자들이 암 치료를 마친 후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황씨는 "아이들은 완치 후 평생 부작용을 관리해야 해 같이 고민해줘야 한다"면서 "26년 전 소아암으로 떠난 예설이 고모 등 가족 2명을 이미 암으로 떠나 보냈다. 예설이 만큼은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릎꿇고 기도해서 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 아이들이 어른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필수의료체계를 구축해달라"고 호소했다.
신성식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는 "정부가 대책으로 내놓은 거점병원 운영은 단골메뉴"라면서 "정부가 수가 등으로 파격적으로 지원해 병원 간 협업이 잘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중장기적으로는 의사 수급 대책 마련과 국립대병원 의대정원 확대, 소아청소년암 완치 후 정신건강과 신체발달을 지원하기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했다.
박향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권역별 거점병원 시범 사업으로 진행하는데, 최대한 현장에서 잘 작동하도록 수가 보상 문제와 환아 부모를 위한 쉼터 마련 등이 최대한 잘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되도록 국회와 논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소아혈액암의 특수성을 고려해 인력 확보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책도 함께 논의하고, 임산부들이 아이를 낳을 병원을 찾기 위해 시간을 지체하지 않도록 또 다른 필수의료인 분만 의료체계 구축 대책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positive10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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