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노동자들의 죽음
[세상읽기]
[세상읽기] 김인아 |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
며칠 전 역대급 폭우가 왔다. 그리고 어김없이 또 사람들이 죽었다. 청주 오송 지하차도 버스 속 희생자 가운데는 주말 폭우에도 출근하던 고령의 여성 청소노동자가 있었다.
그에 앞서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던 6월19일, 경기 하남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카트를 정리하던 29살 노동자도 숨졌다.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폐색전증이라고 전해졌지만, 사람들은 땡볕 아래 뜨겁게 달궈진 주차장에서 매일 수십㎞를 걸어 다니며 일한 노동자의 죽음에 그날의 날씨가 영향을 줬을 거라 짐작한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심심치 않게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소식이 들려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매년 15~20명가량이 열실신이나 열사병 같은 온열질환으로 숨져 산재로 인정받는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이 건설노동자 같은 옥외 노동자 또는 청소나 경비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인데, 신규 입사자들이 많다.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15~17%가 옥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50대 이상 고령자가 많다. 인간의 신체는 외부의 온도에 적응하기 위해 순화(acclimatization)라는 과정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통상 12~14일가량이 필요하다. 신규 입사자라면 새로운 업무는 물론, 작업환경에도 적응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 셈이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등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젊은 남성들이 만성신장질환으로 잇따라 숨지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농약이나 중금속이 원인이 아닌가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뙤약볕에서 4~5시간을 쉬지 않고 일하면서 탈수와 신장 기능의 이상이 발생한 것이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결론지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설탕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전세계 전문가들이 잠시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농장주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신장질환을 진단받으면 해고당하고, 의료에 대한 접근성도 낮은 상황에서 민간요법이 유행하면서 이 문제는 흐지부지됐다.
모두가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 각종 지침과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여름이 시작되기 전부터 현장 시찰과 집중 점검을 한다.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기구들도 저개발국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옥외 노동자들의 온열질환 예방을 위한 각종 지침을 내놓고, 각국 정부들에 정책 권고를 하고 있다. 여기에는 공통으로 고온 순화를 위해 작업시간을 단계적으로 늘리고, 온도와 습도 조절을 위해 온도계를 설치하고, 적절한 환기 시스템을 갖추고, 일반적인 작업에 비해 휴게시간을 늘리고, 그늘진 곳에 휴게시설을 마련하고, 시원한 음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 마트 주차장에서 일하다 숨진 20대 노동자는 휴게실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 덥고 습한 주차장 한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원가 절감 때문에 휴게시설의 에어컨이나 환기시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권고 사항과 가이드라인이 있으니 이를 지키고, 노동자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줬다면 사망에 이르는 사태는 막을 수 있다. 그런데도 이런 지침 등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노동자들의 어려움과 고충을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 그들이 부가가치가 높은 노동을 하는 것은 아니어서 에어컨이나 환풍기를 돌리는 비용이 아깝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위험하고 힘들다는 호소를 불평불만으로 받아들인 건 아닐까?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재난을 겪으며 우리는 재난이 평등하게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후변화라는 재난이 실물화돼 드러나는 폭우나 폭염이라는 현상 속에서도 우리는 불평등을 발견한다. 한 라디오 디제이가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더운 날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운 날 추운 데서 일한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도, 마트 주차장 노동자도, 청소노동자도, 건설 현장 노동자도 모두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필수적인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야기된 피해를 그들이 받고 있다. 이들 노동자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님을, 우리 모두의 일이 될 수 있음을 공감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사건들을 그 바탕에서부터 살펴 다시는 이런 소식을 듣지 않게 되길 바란다. 개인의 잘못이나 책임이 아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장병 잃고서야…해병대 “당시 구명조끼 지급하는 게 맞았다”
- “교사를 지켜달라”…학교 담장 따라 200미터 추모 행렬 [영상]
- 윤석열 정부, 감사원 앞세워 ‘4대강 보 해체’ 뒤집었다
- 기시다 관저 앞서 ‘오염수 방류 지지’ 집회 연 엄마부대
- ‘오염수 취재’ 도쿄전력의 한국 언론 갈라치기
- 생존자 있었는데…길 끊어져 2시간45분 만에 도착한 구급대
- 국민의힘 윤리위 ‘홍준표 징계’ 절차 개시…중징계 나올까
- 분향소에서 “내가 오송 갔다고 바뀔 건 없어” 마음 할퀸 김영환
- 내 차 긁히면 ‘스스로 복원’?…현대차·기아, 나노기술 공개
- org가 아니라 0rg였네… “텔레그램 업데이트” 사칭 주의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