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9860원이냐고요? [슬기로운 기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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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만7200원.
5∼6년 전, 대학을 휴학하고 방송사 비정규직으로 일할 때 받았던 월급이다.
노동 담당 기자로서 지난 3월31일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에 심의 요청을 전달하고, 5월2일 첫 최임위 회의가 열리고, 6월29일 본격적인 최저임금 수준 논의가 시작되고, 지난 19일 최종 결정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취재하며 최저임금이 정해진 과정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결국 지금의 나는 5년 전처럼 9860원이 왜 내년 최저임금인지 도통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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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기자생활]
장현은 | 노동교육팀 기자
154만7200원.
5∼6년 전, 대학을 휴학하고 방송사 비정규직으로 일할 때 받았던 월급이다. 당시 6000원대였던 최저임금보다 약간 더 쳐줘 받게 된 금액이었다. 모든 경험은 남는 게 있다고 생각하던 20대 초반, 처음 받아본 월급이 신기하기만 했다. 물론 신기함이 밥 먹여주는 건 아니었다. 동생과 함께 살던 집 월세도 내야 했고,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장도 보고 연애도 해야 했는데 정말 빠듯이 현상유지만 할 수 있었다. 저축은 먼 얘기여서, 일을 끝내고 복학을 했을 때 나에게 남은 건 정말로 경험뿐이었다.
이것이 내 첫 최저임금의 기억이다. 그 수준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내가 그 정도를 받는 게 적절한 것인지도 몰랐고 사실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다. 다만 10원 단위까지 딱딱 맞춰져 있어, 내가 노동자로서 받아야 할 최적 금액으로 정교하게 결정됐겠지, 막연히 믿었을 뿐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5% 오른 9860원으로 결정됐다. 노동 담당 기자로서 지난 3월31일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에 심의 요청을 전달하고, 5월2일 첫 최임위 회의가 열리고, 6월29일 본격적인 최저임금 수준 논의가 시작되고, 지난 19일 최종 결정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취재하며 최저임금이 정해진 과정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노동계는 내년 최저임금 최초 제시안으로 1만2210원을, 경영계는 9620원 동결안을 제시했다. 처음엔 2590원이라는 큰 격차를 어떻게 줄여나갈지 궁금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과정이 단순해서 놀랐다. 공익위원은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며 계속해서 수정안을 요구했다. 무려 열한차례. 노동계는 최초 제시안에서 2210원을 깎아 1만원을 만들었고, 경영계는 10원씩, 20원씩 올려 240원 인상한 9860원을 최종안으로 냈다. 그 과정에서 실태생계비, 물가상승률, 300인 미만 기업 노동자 임금총액 상승분, 경제성장 전망치 등 다양한 수치들이 오갔지만, 정교한 근거 같은 건 없었다. 공익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공익위원 중재안의 근거는 “노·사 10차 제시안의 중간값”이었다. 14차 회의 때 공익위원이 제시한 심의촉진구간(9820~1만150원)의 근거 역시 뚜렷한 기준이 없이 매년 들쭉날쭉이다. 110일간 최장기 논의라지만, 실상은 막판 한달 새 밀린 숙제 하듯 결정됐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
결국 지금의 나는 5년 전처럼 9860원이 왜 내년 최저임금인지 도통 모르겠다. 온갖 절차와 산식이 제시됐지만 객관적 근거나 계산을 통해 나온 숫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법이 정하는 기준이 제대로 반영되는지, 근거로 제시되는 수치는 객관적인지, 매년 최저임금 논의 과정에서 비슷한 질문들이 반복되는 이유다. ‘정교하게 계산된 결과겠지’라는 막연한 믿음은 거둬들였으니 배운 건 있다.
최근 저임금 노동자들에 관한 기획기사를 쓰면서 만난 노동자들은 “밥 먹고 과일 사 먹는 데 걱정 안 할 만큼”의 평범한 삶을 위해 내년도 최저임금이 1만2000원선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몇년간 물가인상률에도 못 미치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실질임금은 하락해왔다. 공공요금 인상 등 내년도 지갑 씀씀이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험’이 아닌 ‘삶’을 위해 일하는 이들에게 내년 최저임금 9860원은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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