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커피' 위한 착한 거래…지구 반대편 농장 지켜낸 청년들
중남미 커피 생두 직거래 '10년의 일기'
맛·다양성 중시해 좋은 원두 직거래 늘었지만
중간 수출업체만 배불리고 농장 수익은 그대로
일정한 출하가격 보장해야 커피 산업 지속가능
커피와 빵에 진심인 동료 6명이 모여 회사를 창업하기로 했다. 2014년의 일이다. 세상에 많고 많은 카페와 회사가 있는데도 우리는 왜 커피 회사를 만들려고 하는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 토론 끝에 우린 ‘기술자’의 태도를 갖는 동료들의 삶을 보호·지원하고, 우리와 관계를 맺는 이들에게 최고 품질의 제품과 영감을 줄 수 있는 회사를 세우기로 했다. 그게 프릳츠다.
우리는 회사를 설립하기 전인 2014년 1월 산지로 날아갔다. 그전에도 몇 차례 산지를 방문했지만 늘 아쉬웠다. 농장마다 방문하는 30분 남짓의 시간으로는 이들의 삶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 좋을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생두 시장은 구매자 중심의 시장이다. 구매자는 소수이고 생산자는 다수다. 결국 구매자의 결정에 좌우된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관계를 청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다. 두 달이 넘는 산지 일정을 잡고, 몇몇 농장은 1주일씩 머물며 농장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에 참여했다. 그 속에서 이들의 삶을 조금은 엿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다이렉트 트레이드가 뭐지?
다이렉트 트레이드는 말 그대로 직거래다. 거래의 주체는 생산자와 구매자, 거래의 객체는 생두다. 스페셜티 커피가 일반적이지 않던 시절에는 조합의 모든 커피를 섞어 팔았다. 그러니까 A 농장의 품질이 좋다고 해서 가격을 높게 받거나 그 노력이 인정되지 않았다. 생산자로서는 생산량만 중요했다. 수확, 품종과 가공 방식에 대해 연구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스페셜티 커피, 즉 커피를 단지 카페인 충전의 도구로만 보지 않고 다채로운 음료로 바라보는 흐름이 형성되면서 품질이 중요해졌다. 생두 구매자들은 산지를 돌아다니며 커피 품질을 감별하는 커핑을 통해 ‘점수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지급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 큰 조합이나 농장에 속했던 소규모 농장에게 독립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불과 20여 년 전의 이야기다. 그 사이 커피 품질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산업 규모도 커졌다. 커피 품질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것도 이제는 당연하다. 커피 소비자들도 맛과 품질에 예민해졌다. 품질을 중시하는 생산자 역시 더 높은 수익을 거두기 시작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커머셜 생두로 인한 수익이 100이라면 스페셜티 생두로 인한 수익은 고작 135 정도다. 생두의 가격 차이는 3배에서 3.5배 정도나 나는데도 말이다. 왜 그럴까.
다이렉트 트레이드의 변질
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커피산업은 커졌다. 다이렉트 트레이드 초기 생두 구매자들은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과 같았다. 어떤 농장이 좋은 품질의 커피를 생산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발품을 팔아 찾아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검색 몇 번으로 좋은 농장을 알 수 있게 됐고, 구매자가 일일이 농장에 연락할 필요 없이 수출업체 몇 곳만 선택하면 모든 농장을 방문할 수 있다. 이런 편리한 시스템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원두 유통과 수출업체가 많아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생두 거래에서 돈이 몰리는 곳은 생산자가 아니라 결국 중간자가 되고 말았다.
생산자는 개인으로 이뤄진 여럿이고 이를 대표할 단체가 없다. 구매자는 품질이 좋은 생두를 사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양자를 연결해 주는 수출업체와 수입업체는 자본이 풍부하니 결국 이들이 힘을 갖는다. 좋은 품질의 커피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최고의 사명인 스페셜티 커피 회사는 수많은 샘플 중 가장 점수가 높은 커피를 구매한다. 실제 구매자가 생산자가 마주하는 시간은 30분 안팎. 숫자만으로 판단하다 보니, 다이렉트 트레이드의 본질 중 하나였던 정당한 거래(생산자의 삶도 나아지게 하겠다는 가치)는 후순위로 밀리거나 아예 사라진다.
앞으로 커피를 못 마시게 될 확률
우리는 지난 10년간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 꾸준히 농장을 찾아가 그들의 삶을 나아지게 할 방법, 그러면서 좋은 커피를 사올 방법을 궁리했다. 프릳츠 같은 스페셜티 커피 회사가 생산자의 안위까지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앞으로 커피를 정말 비싼 가격에 마시게 되거나 아예 못 마시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커피를 최소한 지금과 같은 조건으로 오랫동안 마실 수 있도록 하는 지속 가능성은 결국 기후 위기와 커피 농장들의 수입과 깊게 연결된다. 기후 위기는 전 지구적인 이슈여서 여기서 언급하는 건 적절하지 않으나 커피 재배 환경이 바뀌고 생산 가능 지역이 변하는 것은 거대한 문제다. 이런 가운데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생산자를 제외하고 커피와 연관된 다른 모든 분야의 수입만 증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호주 세븐시드커피의 마크 던던 대표는 “커피는 정말 비싸질 것이다. 한 잔에 7달러 정도가 될 것이다. 생두는 부족하고, 가격은 치솟을 것이고, 카페는 문을 닫을 것이다.…사람들은 하루에 두세 번 대신 1주일에 두 번 정도 카페를 찾을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커피 일을 하면서 뿌듯했던 일화가 있다. 농장이 특정 수출업체에 끌려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은행 대출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수확기가 되면 큰돈이 필요하고, 은행은 일종의 담보를 요구한다. 그 담보란 ‘다음에 생산하는 생두를 다 팔 수 있다는 증명서’다. 이걸 무기로 특정 수출업체들은 각 농장에 독점 계약을 요구한다. 농장들은 턱없이 적은 돈을 받아도, 돈을 늦게 받아도, 혹은 다 받지 못해도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그렇게 수출회사로부터 독립하길 바라던 한 농장을 알게 됐다. 프릳츠는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한 뒤 그들에게 “정당한 가격으로 오랫동안 상당 부분 구매할 테니 독립하시라”고 제안했다. 결국 그렇게 됐다.
물론 이것은 아주 작은 일화일 뿐이다. 구조적인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건 난망한 일이지만 프릳츠, 그리고 비슷한 시기 창업한 스페셜티 커피업계 동료들은 이런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정당한 농장 출하 가격을 보장하는 수출 회사와 일하고, 농장과 장기계약을 맺어서 일정 수입을 보장하는 것. 필요하다면 물적·인적 지원도 아끼지 않으려 한다. 잘될까? 답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이런 방식의 거래가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든다고 믿는다. 물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참하느냐가 관건이다. 결국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달려 있다.
코스타리카=김도현 프릳츠 이사·<불편한 커피>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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