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 때처럼 술 많이 마시는 미국인들, 이젠 맥주보다 毒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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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0년 당시 미국인은 한 사람당 연간 9.57L의 알코올을 섭취했다. 이후 술이 건강에 해롭다는 이유로 장기간에 걸쳐 절주하는 추세가 이어졌다. 1995년에는 알코올 섭취량이 8.14L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알코올 섭취량이 다시 늘어나면서 지난해에는 1860년대 수준(9.5L)까지 증가했다. 그래서 요즘 ‘미국인들이 남북전쟁 시절만큼 술을 많이 마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왜 그럴까. 독한 술을 찾는 미국인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알코올남용중독연구소에 따르면 1995년에는 미국인 한 사람당 독주(증류주)를 마시면서 연간 2.38L의 알코올을 섭취했다. 26년이 지난 2021년 이 양은 3.82L로 크게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맥주를 통해 섭취하는 알코올 양은 4.69L에서 4.01L로 줄었다. 그만큼 마시는 술이 독해졌다는 얘기다.
결국 지난해 미국 주류 시장에서 사상 최초로 위스키·코냑 등 증류주(발효된 양조주를 다시 증류시켜 알코올 도수를 높인 술)가 차지하는 비율이 맥주를 넘어섰다. 미국증류주협회(DSC)에 따르면, 지난해 증류주 매출은 375억달러(42.1%)로, 374억달러인 맥주(41.9%)를 제쳤다. 이런 변화는 일회성이 아니다. 2000년만 해도 증류주는 미국 주류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8%에 불과했지만, 이후 꾸준히 올라 2010년에 33%로 상승했다. 2021년(41.3%)에는 처음으로 40%를 넘어섰다.
테킬라 인기 상한가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 중에서도 미국에서 부쩍 인기가 높아지는 건 멕시코를 대표하는 술 테킬라다. 작년 미국 내 테킬라 매출은 60억달러(약 7조6000억원)로 전년보다 17% 증가했다. 원래 테킬라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학생이나 저소득층 이민자들이 마신다는 인식이 있어 널리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그러다 2013년 할리우드 스타 조지 클루니가 기업가 등과 함께 내놓은 ‘카사미고스’라는 테킬라가 출시된 이후 테킬라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카사미고스는 병당 80~100달러로 비싼 편인데도 출시 후 3년 동안 미국에서 144만병이 팔려나갔다. 이후 테킬라는 매년 약 54%씩 성장했다.
테킬라 선호도가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동안에도 전통적으로 증류주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리는 보드카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작년 미국의 보드카 매출은 72억달러(약 9조1200억원)에 달했다. 위스키를 즐기는 미국인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숙성된 위스키의 맛과 향을 즐기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 스코틀랜드식 싱글 몰트 위스키를 만드는 양조장이 미국에 약 200곳에 달한다”며 “과거 위스키가 미국에서 틈새시장에 속했지만 이제는 ‘주류 시장의 주류’로 발돋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맥주 판매는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맥주 판매량은 289억L로 전년보다 3.1% 떨어졌다. 2000년만 해도 맥주는 전체 주류 시장에서 55%를 차지했는데, 그 비율이 계속 떨어지면서 2010년(49.8%)에는 50% 아래로 내려왔다. 결국 지난해 증류주에 처음으로 추월당했다. 포천지는 “맥주에 대한 미국인의 위대한 사랑은 서서히 끝나고 있다”고 했다.
여성, 젊은 층 위스키 즐긴다
전문가들은 여성과 젊은 층도 과거보다 도수가 높은 술을 더 많이 찾고 있다고 분석한다. 컨설팅 회사 퓨처래버러토리 분석에 따르면, 1990년대만 해도 위스키를 마시는 미국 여성의 비율은 15%에 불과했지만 2017년에는 37%까지 올랐다. 더 이상 위스키가 ‘남자의 술’이 아니라는 얘기다.
가수 레이디 가가는 노래를 만들면서 ‘제임슨 아이리시’ 위스키를 즐긴다고 했고, 배우 할 베리는 “나는 위스키 애호가”라고 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역시 ‘크라운 로열’ 위스키를 마시는 모습을 공개한 적 있고, 버번 위스키인 ‘메이커스 마크’의 양조장을 방문해 애정을 표시했다.
물론 모든 여성이 독한 술을 즐기는 건 아니다. 독주가 부담스러운 여성이나 젊은 층은 도수가 낮은 증류주를 찾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알코올 도수가 4~5%인 ‘RTD(제조나 혼합 없이 캔 형태로 바로 마실 수 있는)’와 칵테일이다. RTD·칵테일은 여성과 젊은 층이 적극적으로 찾으면서 2021년 약 16억달러였던 매출이 작년에는 약 22억달러를 기록해 작년 한 해 미국에서 매출 증가율(35.8%)이 가장 높은 주류로 기록됐다. RTD가 인기를 끄는 건 알코올 도수가 비슷한 맥주가 위축되는 요인이 된다.
물가 상승 타격이 큰 맥주
지난해부터 급등한 물가도 독주와 맥주의 희비가 엇갈리게 만들었다. 맥주의 주원료인 보리 가격(1미터톤 기준)은 98달러(2020년 4월)에서 262달러(2022년 4월)까지 뛰었다. 미국 매체 스태커에 따르면 475ml짜리 캔맥주는 1993년 0.81달러, 2013년 1.27달러였는데, 올해는 1.75달러까지 올랐다.
미국 노동통계국의 맥주 물가지수(1997년 가격이 100)는 지난해 1월 188에서 올해 5월에는 202로 뛰었는데, 이런 6개월간의 상승 폭은 2015년 1월(162)에서 2020년 12월(178)까지 6년간의 상승 폭과 맞먹는다. 마켓워치는 “물가 상승으로 인해 저소득층은 더 값이 싼 맥주를 찾고, 반대로 고소득층은 증류주나 와인을 찾게 되면서 맥주 소비량이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맥주와 달리 독주는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덜 받았다. 네덜란드 업체 위스키스탯이 만든 위스키 가격지수(2012년 12월 가격이 100)는 2021년 3월 273에서 지난해 3월에는 357까지 올랐다가, 올해 6월에는 다시 276으로 내려왔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17년산 위스키 같은 증류주는 17년 전 원료로 제작되기 때문에 맥주보다는 상대적으로 현재 물가에 영향을 덜 받는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증류주 성장세가 가파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위스키류 수입액은 2억6684만달러로 전년보다 52% 급증했다. 반대로 수입 맥주 인기는 시들해졌다. 맥주 수입액은 2018년 처음으로 3억달러를 돌파한 뒤 4년째 감소해 지난해에는 1억9510만달러로 내려앉았다. 롯데마트 주류담당 이영은 팀장은 “젊은 소비자들이 맥주에서 와인으로 관심이 이동했다가 이제 위스키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당분간 증류주의 상승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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