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아동학대로 신고···교사 면책법 통과돼야"
교원단체·시민 추모 잇따라
작년 교권침해 심의 3035건
교사 93% "신고당할까 걱정"
교직을 시작한 지 갓 1년 된 20대 여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는 20일 오전부터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서울교사노조와 전국초등교사노조가 이곳에서 추모 문화제를 시작한 이날 오후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 등 교원 단체는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철저한 진상 조사 및 수사를 요구했고 정치권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등 이번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는 모양새다. 교권 침해를 넘어 교권 붕괴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현 상황이 젊은 교사를 죽음으로 내몬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기저에 깔려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추모제 현장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동료·선후배 교사들이 보낸 ‘학부모 갑질로 꽃다운 삶을 빼앗기셨습니다’ ‘선생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등 고인을 추모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수백 개의 근조 화환이 학교 담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흰 국화를 든 동료 교사의 추모 행렬도 이어졌다.
이날 학교를 찾은 한 선생님은 “고인에게 과도하거나 불합리한 업무가 있었는지는 수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모든 교사가 내몰리는 상황에서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또 이런 사건이 발생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가 교실에서 학급 제자에게 폭행을 당한 사건을 언급하며 교권 추락이 심각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비슷하게 아이한테 맞은 경험이 있다”며 “아동학대법 등으로 교사들이 손발이 묶여 제대로 된 지도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답답해 했다.
교육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학생에게 맞거나 숨진 채 발견되는 일이 잇달아 발생했다. 서울 양천구의 한 공립 초등학교에서는 6학년 담임교사가 지난달 30일 교실에서 학생에게 폭행당해 전치 3주의 진단을 받았다. 해당 학생은 정서·행동장애 학생으로 특수반 수업을 듣고 있었다. 같은 달 23일에는 인천 모 초등학교에서 특수학급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이달 18일에는 서초구의 공립 초등학교에서 이 학교 1학년 담임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해 숨진 채 발견됐다. B 씨는 지난해 발령받은 2년 차 신규 교사였다. 인터넷상에서는 B 씨가 학급 학생들의 다툼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는 등 이른바 ‘학부모 갑질’이 사망의 원인이 됐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숨진 교사의 일기장을 확보해 정확한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이처럼 교권 침해의 심각성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2018년 2454건에 불과했던 교권 침해 심의 건수는 지난해 3035건으로 25% 급증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해 9월 전국 유·초·중·고·특수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6243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했을 당시에도 응답자의 92.9%가 아이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아동학대로 의심받아 신고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교육 당국도 교권 회복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교육부는 2학기부터 구체적인 지도의 범위·방식 등에 관한 기준 등이 담긴 학교 생활지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일선 학교에 보급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교원 배상책임보험의 상향 평준화를 위한 표준 모델도 마련해 다음 달 중으로 시도 교육청에 안내할 예정이다.
이 밖에 피해 교원과 침해 학생을 즉시 분리하고 중대한 교육 활동 침해 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작성할 수 있도록 ‘교원지위법’도 개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교원 단체는 이 정도로는 교권 회복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교총 관계자는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가 점점 늘고 있다”며 “교사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가족과 정치권 역시 이번 사건에 대해 수사 당국의 철저한 수사와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교사노조가 연 기자회견에 참석한 A 교사의 외삼촌 B 씨는 “젊은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원인이 학부모 갑질인지, 악성 민원인지, 아니면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병민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저연차 교사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수사 당국의 성역 없는 수사, 철저한 진상 규명이 중요하다”며 “학교 현장에서 무참하게 무너져버린 교권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후속 조치 마련에 서울시교육청과 교육 당국이 적극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인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보도 자료를 통해 “교원의 교육 활동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해 더 이상의 비극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성규 기자 exculpate2@sedaily.com정유민 기자 ymjeong@sedaily.com박경훈 기자 socool@sedaily.com신중섭 기자 jseop@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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