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기분 나쁘면 아동학대가 되는 현실이 가장 힘들다…” 9년차 교사의 탄식 [긴급점검]

이희진 2023. 7. 2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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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한 초등학교에서 2년차 담임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에 ‘학부모 민원’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전국 교사 여론이 들끓고 있다. 교권이 무너진 현실에서도 묵묵히 일해왔지만 20대 젊은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에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9년차 교사 A씨 이야기를 통해 무너진 교권의 현실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수도권에서 근무 중인 9년차 교사 A씨는 20일 세계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교사를 무시하는 일이 일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게) 매일 일어나는 일”이라며 “이제는 진짜 한계에 다다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A씨는 “교육은 ‘옳고 그름’을 알려줘야 하는데 이젠 옳고 그름이 아니라 (아이들의) ‘좋고 싫음’이 중요해졌다”며 “모든 게 즐겁고 좋을 수는 없는 건데 일단 아이들의 기분이 나쁘면 안 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그는 “아이가 잘못을 하면 훈육을 해야 하는데, 훈육 당한 아이가 기분이 나쁘면 아동학대가 된다”며 “이게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다음은 A씨와 일문일답.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최근 사망한 서울 초등학교 교사의 동료가 고인을 애도하는 꽃을 놓고 있다. 뉴시스
—9년차 교사인데 예전과 지금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 느껴지나.

“지난해쯤부터 바뀌었다. 교사들의 커뮤니티가 있는데 제가 신규 때만 해도 자료 공유 글이나 수업 팁 같은 글이 인기글이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턴 그런 글들이 안 보이고 ‘고소당했습니다’, ‘그만 두려 합니다’ 이런 글들이 인기글에 올라온다. 제 주변에도 고소당한 분들이 많아졌고,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

—학교에서 느끼는 달라진 점은?

“기피 학년이 바뀌었다. 원래는 6학년이 기피 학년이었다. 아이들이 저학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장했다보니 제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기피 학년이 1학년으로 바뀌고 있다.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학부모 때문이다. 시도때도 없이 연락을 하니 선생님들이 너무 힘들어한다. 어떤 학교는 1학년 선생님 절반가량이 일을 힘들어서 못하겠다며 병가를 썼다.”

—학부모들이 개인 번호로 연락하는 경우가 많은지?

“초임 때는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교사와 학부모가 소통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이 따로 있다. 카카오톡처럼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고, 보이스톡처럼 전화도 된다. 번호가 노출이 안 되다보니 요즘은 개인 번호로 연락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럼 그 앱으로는 연락이 자주 오는지.

“정말 자주 온다. 시도 때도 없이 온다고 보면 된다. 새벽에 전화가 오거나 하면 안 받을 때도 있다. 제가 수업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는 건데 연락이 안 되면 일단 화를 내신다. 학교에선 아이들이 하루종일 말을 걸기 때문에 정말 정신이 없는데 뒤늦게 연락을 받으면 ‘뭐하셨냐’, ‘논 것 아니냐’, ‘왜 대답이 없었냐’ 이런 답변이 온다. 연락하는 이유도 대부분 중요한 것들이 아니다.”

—주로 어떤 연락인가.

“자발적으로 방과 후에 필요한 아이들에게 보충학습을 해준 적이 있다. ‘보충’은 말 그대로 필요한 아이들에게 해주는 것이고 필수도 아니다. 필요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시작한 건데 한 학부모님이 연락이 와서 본인 아이 학원 안 가는 요일을 알려주며 그때 보충학습을 해달라고 하더라. 근데 그 친구는 보충이 필요 없는 아이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더니 ‘아이가 선생님을 좋아해서 하고 싶어하는데 그것 좀 맞춰주면 안 되냐’고 했다. 그런 말들을 들으면 황당하다. 이런 일이 매일 일어난다.”

—가장 힘든 점은?

“아이들의 기분을 살펴야 하는 게 가장 힘들다. 교육은 ‘옳고 그름’을 알려줘야 하는데 이제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아이들의 ‘좋고 싫음’이 중요해졌다. 예를 들면 공부는 힘들어도 해야 하는 거니 ‘우리 열심히 하자’ 이렇게 돼야 하는데 아이들이 괴로워하면 ‘하지 말자’ 이렇게 됐다. 모든 게 즐겁고 좋을 수는 없다. 그런데 일단 (아이들의) 기분이 나쁘면 안 된다. 훈육을 해도 아이가 기분이 상하면 아동학대가 된다. 점점 옳고 그름이 아니라 기분의 좋고 싫음이 기준이 되고 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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