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기] 신생팀 물금고, 기적의 대역전승... 콜드패 예상 깨고 10점차 뒤집었다
충암고와 8강행 다퉈
“살면서 이런 야구도 해보네요. (강승영 물금고 감독)”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경남 물금고가 10점차 열세를 뒤집는 ‘기적’을 연출하며 창단 첫 청룡기 8강 무대에 올랐다.
물금고는 20일 서울 신월야구장에서 열린 제78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조선일보·스포츠조선·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공동 주최) 16강전에서 마산고를 상대로 14대12 대역전승을 거뒀다.
경기는 한 편의 스포츠 영화와도 같았다.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는 학생 야구의 진수가 돋보였다. 물금고는 2015년에 야구부를 창단한 신생팀. 반면 마산고 야구부는 1942년에 창단한 야구 명문고다. 이번 대회에서도 우승후보 덕수고와 부산고를 연이어 잡아내며 ‘다크 호스’ 면모를 과시하고 있었다.
물금고는 1회말 2사 1·2루에서 5번타자 김우성(2학년)의 좌전 적시타가 터져 1점을 선취하며 기선제압을 하는 듯 했다.
그러나 3회초에 ‘비극’이 시작됐다. 마산고는 3회초에만 11점을 폭격하며 물금고 마운드를 초토화시켰다. 물금고 투수진이 극심한 제구 난조를 보였고, 마산고 타선은 불을 뿜어냈다.
마산고는 3회초 0-1로 뒤진 1사 2·3루 상황에서 4번타자 이정윤(3학년)이 역전 2타점 2루타를 때렸다. 이어 5번타자 배강민(3학년)이 적시타를 치며 마산고가 3-1 리드를 잡았다. 물금고는 선발 서보한(3학년)을 내리고 김재덕(2학년)을 올렸다.
그러나 김재덕은 6번타자 신민우(2학년)에게 적시타를 허용하고 연달아 몸에 맞는 공을 던져 1사 만루 위기를 자초했다. 결국 세 타자만 상대하고 내려갔다.
뒤이어 마운드에 오른 물금고 최호재(3학년)는 볼넷 3개와 폭투, 안타를 연달아 내줬다. 마산고 8-1.
물금고의 네 번째 투수 손민욱(3학년)이 볼넷 2개와 폭투를 던진 끝에 7번타자 이재원(1학년)을 땅볼로 처리하며 길었던 3회가 막을 내렸다. 어느덧 마산고 11-1. 마산고는 한 이닝 동안 타자 16명이 오르며 타자 일순했다. 야구장 전광판엔 한 자릿수 숫자만 표기되는 탓에 이날 신월야구장 전광판에는 ‘B’가 등장했다. 10득점은 A, 11득점은 B를 뜻한다.
콜드게임패를 당해도 할 말 없을 법한 점수 차였지만, 물금고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특히 승리를 확신한 듯한 마산고는 4회말을 앞두고 에이스 옥진율(2학년)을 내리고 3학년 투수 이재원을 투입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패착이 됐다.
물금고는 4회말에 타자 일순하며 7점을 내며 반격을 시작했다. 7번타자 이승주(2학년)가 우전 안타로 밥상을 차렸고, 대타로 들어온 한동근(3학년)이 볼넷을 골라 나갔다. 무사 1·2루. 어떻게든 득점하고 보자는 의지였을까. 9번타자 김지훈(1학년)은 이때 희생 번트를 댔지만 재빠르게 내달리며 결국 이는 번트 안타가 됐다. 어느덧 무사 만루.
물금고는 1번타자 공민서(3학년)가 무사 만루에서 우전 적시타를 때려 2-11로 추격의 불씨를 지폈다. 이후 타자들이 연달아 몸에 공을 맞으며 4-11로 격차를 좁혔다. 4번타자 김기환(2학년)이 무사 만루에서 오른쪽 희생플라이를 또 치며 5-11이 됐다. 그리고 5번타자 김우성(2학년)이 1사 1·3루에서 좌월 3점포를 날리며 본격적으로 분위기를 탔다. 물금고 선수들은 덕아웃에서 뛰쳐 나와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 김우성을 얼싸 안았다. 10점차로 거의 내줬던 경기는 순식간에 8-11 3점차로 좁혀지며 알 수 없는 경기가 됐다. 오히려 주도권은 물금고에게 넘어갔다.
마산고는 5회초에 1점을 챙겼지만, 물금고는 반격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5회말 선두타자로 나선 한동근이 볼넷을 얻어냈고, 이어 김지훈의 번트가 그대로 안타가 됐다. 다음에 타석에 들어선 공민서(3학년)의 안타와 마산고의 실책이 겹쳐 1점을 더 따라잡았다. 마산고에서 폭투까지 나오며 10-12로 바짝 추격했다. 이후 고승현(3학년)이 무사 1·2루에서 희생 번트를 대고, 김기환이 볼넷을 골라나가며 1사 만루가 됐다. 그리고 김우성이 1사 만루에서 우전 적시타로 2타점을 올리며 물금고는 12-12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어 이승주(2학년)가 2사 1·3루에서 우전 적시타를 때리며 기어코 경기를 13-12로 뒤집었다.
이후 8회초까진 양 팀 다 득점하지 못하며 1점차 박빙 승부가 이어졌다. 하지만 물금고는 8회말 1사 1루에서 공민서가 좌중간을 가르는 적시타를 때리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물금고 14-12.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집중력과 희망을 잃지 않은 타자들 외에도 물금고 대역전승의 숨은 주역은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이날 고교 커리어 첫 공식전을 치른 1학년 조동휘다.
사이드암 투수인 그는 5회초 무사 1루 때부터 등판해 5이닝 동안 안타 2개만 내주고 무실점으로 마산고 타선을 봉쇄하며 팀의 승리를 지켜냈다.
경기도 극적으로 끝났다. 마산고 성지백(2학년)은 2사 1루 기회에서 왼쪽으로 안타성 타구를 날렸지만 물금고 좌익수 고승현이 몸을 내던지며 타구를 잡아냈다. 자칫 공이 빠졌더라면 그라운드 홈런도 가능했던 상황.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이날 물금고의 손을 들어줬다.
물금고 야구부 창단부터 팀을 이끌고 있는 강승영 감독은 “심판진조차도 5회 콜드라고 다들 생각하셨을 것”이라고 웃으며 “지도자하면서 이런 경기를 해 본 건 처음”이라고 했다. 이어 “‘해봐야 안다’ ‘10점 차이 나지만 포기하면 안 된다’는 서로의 끈끈함이 역전의 발판이 됐던 것 같다. (다음 상대인) 충암고를 상대로도 즐기면서 해보겠다”고 말했다.
고교 공식경기 데뷔전을 성대하게 치른 조동휘는 “1-11로 지고 있을 때만 해도 짐을 쌀 준비를 했다. 짜릿했다. 형들을 믿으면서 자신 있게 던졌다. 아웃카운트가 한 개씩 쌓이며 긴장이 풀리고 그래서 재미있게 했다”며 “오늘 경기가 성장을 위한 큰 단계가 된 것 같다. 계속 파이팅 해서 형들에게 도움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물금고는 오는 22일 목동야구장에서 충암고와 8강행을 다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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