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리위, ‘수해 중 골프’ 홍준표 징계절차 개시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윤리위)가 ‘수해 중 골프’로 비판받은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20일 징계절차를 개시했다. 당원권 정지 이상 중징계가 유력한데, 구체적인 징계 수위는 홍 시장의 태도에 달렸다는 관측이 나온다. 홍 시장은 ‘과하지욕(袴下之辱)’이라는 사자성어로 맞섰다.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가랑이 밑을 기는 치욕을 견뎌낸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윤리위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홍 시장 징계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사유는 당 소속 공직자가 ‘자연재해나 대형사건·사고 등으로 국민이 슬픔에 잠겨 있거나 국민과 국가가 힘을 모아야 할 경우’ 등에 ‘오락성 행사나 유흥·골프 등 국민 정서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국민의힘 윤리규칙 22조2항 위반, ‘당원은 예의를 지키고 사리에 맞게 행동해야 하며, 당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언행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 윤리규칙 4조1항 위반이다. 앞서 윤리위는 지난 18일 저녁 직권으로 20일 회의에 징계절차 개시 여부를 상정하겠다고 밝혔다.
황정근 윤리위원장은 이날 징계절차 개시 후 기자들과 만나 “직권상정 이후 어제 (홍 시장이) 공식 사과하면서 논란 확산이 차단되기는 했지만, 윤리위로서는 이미 벌어진 해당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며 “당 소속 광역자치단체장이 공무원으로서 법령을 위반했는지, 정해진 매뉴얼을 준수했는지 여부와 별개로 당원으로서 윤리규칙을 위반한 것은 징계 사유가 된다고 본다”고 밝혔다.
홍 시장은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우가 내리던 지난 15일 대구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며 비판 여론이 일었지만, 홍 시장은 “괜히 쓸데없이 트집 하나 잡았다고 벌떼처럼 덤빈다고 내가 거기에 기죽고 잘못했다고 할 사람이냐”며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홍 시장은 윤리위의 징계절차 개시 여부 안건 직권 상정으로 중징계 가능성이 커지고 나서야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수해로 상처 입은 국민과 당원 동지 여러분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했다.
윤리위 징계절차가 시작되면서 홍 시장은 징계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남은 것은 징계 수위다. 국민의힘 징계 종류는 경고, 당원권 정지, 탈당 권유, 제명이 있다. 최소 당원권 정지 징계를 받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윤리위가 홍 시장 사과가 진정성이 있다고 판단할지, 홍 시장 사과에 따라 비판 여론이 다소 진정될지에 따라 홍 시장이 제명을 피할 수 있을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잘못이 없다’는 태도로 나오다가 뒤늦게 고개를 숙인 점은 홍 시장에게 불리한 요소다.
이양수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SBS 라디오에서 “많은 국민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엄중한 분위기를 반영한 징계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윤리위가) 국민들이 바라보는 눈높이에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두 경고”(하태경 의원)를 주장하는 당내 인사도 있지만, 소수다.
윤리위원인 김기윤 변호사는 이날 회의 시작 전 기자들과 만나 “홍 시장이 사과를 했지만, 국민들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며 “사과에만 그치지 않고, 수해현장을 찾아가 유가족들을 위로하거나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양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과거에 유사한 사건에 대해 징계 처분한 결과는 참작(고려)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 시장은 앞서 논란이 된 두 건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글을 삭제했다. 또한 회의 전 윤리위에 사과문과 의견서, 비상상황 근무현황표 등을 제출했다. 진정성을 보여줘 징계 수위를 낮춰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평소 당 지도부에 날 선 비판을 해온 홍 시장은 이날 ‘달빛고속철도 특별법’ 제정을 위해 힘쓰고 있다며 윤재옥 원내대표에게 SNS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깍듯이 인사했다. 홍 시장은 이날 저녁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과하지욕”이라는 사자성어를 올렸다. 초한지에 나오는 한신이 한나라 명장이 되기 전 동네 건달의 가랑이 밑을 지나가는 치욕을 견뎌낸 데서 유래한 말이다.
징계 결과는 오는 26일 윤리위 회의에서 나올 예정이다. 윤리위는 26일 홍 시장이나 대리인 소명을 들은 뒤 당일 징계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2006년 홍문종 당시 경기도당위원장이 수해 중 골프를 쳐 논란이 됐을 때는 사건 발생부터 윤리위 제명 결정까지 나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윤리위는 수해 중 당협위원회 워크숍을 개최한 강성만 서울 금천 당협위원장에 대해서는 당무감사위원회에 추가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는 김현아 경기 고양정 당협위원장에 대해서는 다음달 회의를 열어 징계 수위를 결정하기로 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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