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직 박탈에 당 해산 위기까지…타이 군부 또 ‘개혁 뒤엎기’
총선에서 승리한 정치인의 의원 자격을 박탈하고 소속 정당을 해산시키는 타이의 ‘사법 쿠데타’가 반복되고 있다. 타이 젊은이들의 열망을 대변했던 ‘40대 기수’ 피타 림짜른랏(42) 대표가 낙마하면서, 그가 추진하려던 개혁이 실현되지 못하게 됐다.
타이 헌법재판소는 19일 지난 5월 총선에서 제1당의 자리에 오른 전진당의 피타 림짜른랏 대표의 의원 자격을 ‘일시 정지’해 이날 예정됐던 총리 선출 투표가 무산됐다. 타이 선거관리위원회는 앞선 12일 피타 대표가 현재 파산 상태인 방송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며 헌재에 의원직 ‘직무 정지’와 ‘자격 박탈’ 의견과 함께 이 사건을 회부했다. 피타 대표는 “아버지로부터 주식을 물려받았으나 방송사는 2007년 이후 방송을 중단해왔다”며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헌재는 선관위의 손을 들어줬다.
최종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타이 개혁을 위해 총리가 되려던 피타 대표의 도전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이날 의회에서 피타 대표가 단독 후보로 나선 2차 총리 선출 투표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보수파 의원들이 반대해 투표 자체가 무산됐다. 피쳇 츠아므앙판 타이 하원 부의장은 다음주에 총리 선출 투표가 열리지만 피타 대표는 후보로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20일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타이 헌재는 최종적으로 피타 대표의 의원직을 박탈하고 지난 5월 총선에서 제1당의 자리에 오른 전진당(하원 500석 가운데 151석)을 해산할 가능성이 높다.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19차례 이상 쿠데타가 일어났던 타이에서 사법부는 군부 및 보수파의 강한 입김 아래 놓여 있다. 그로 인해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2006년 9월 쿠데타로 실각한 이후 군부의 눈 밖에 난 정당은 총선에서 승리하고도 번번이 헌재 해산 판결로 사라지는 일이 반복돼왔다. 탁신 전 총리가 대표로 있던 타이락타이당도 2007년 5월 헌재 해산 판결로 사라졌다. 그 후신인 국민의힘(PPP)도 2008년 12월 부정선거 혐의로 해산 판결을 받았고, 전진당의 전신인 신미래당의 운명도 같았다.
2018년 기업인 출신 타나톤 쯩룽르앙낏이 군사 정권을 비판하며 창당한 신미래당은 이듬해인 2019년 3월 총선에서 2위를 기록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헌재는 그해 11월 타나톤 대표가 언론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의원 자격을 박탈했다. 이듬해인 2020년 2월 헌재는 타나톤 대표가 당에 빌려준 돈을 문제 삼아 당을 해산하고 타나톤 대표 등의 정치 활동을 10년간 금지했다.
더구나, 헌재는 현재 왕실모독죄를 개정하겠다는 전진당의 공약이 입헌군주제를 타도하려는 계획에 해당한다는 제소에 대한 심리에 돌입했다. 왕실모독죄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1건당 최대 15년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최악의 경우 피타 대표는 구속되고 전진당은 해산될 수 있다. 그는 19일 의사당을 나서며 지지하는 의원들에게 주먹을 쥐고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했으나, 운명은 풍전등화이다.
피타 대표는 자신의 총리 도전이 실패하면 야권 연합 제2당인 탁신 계열 타이공헌당의 후보를 총리로 밀겠다고 밝혀왔다. 탁신 전 총리의 딸로 이 당의 대표인 패통탄 친나왓은 총리 후보는 자신이 아닌 부동산 재벌 출신 세타 타위신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군부 및 보수파가 탁신 계열 정당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드러내와 이들이 연립정부를 꾸릴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다만, 타이공헌당이 이런 점을 고려해 보수파를 연정에 끌어들여 집권을 시도할 가능성은 있다.
어떤 연정 시나리오가 펼쳐진다 해도 징병제 폐지를 통해 군부 권력을 약화시키고 왕실모독죄 개정을 통해 군주제를 개혁하려던 전진당의 구상은 좌절됐다. 5월 총선을 통해 드러난 타이 젊은이들의 열망이 군부와 보수파의 ‘사법 쿠데타’에 의해 다시 한번 꺾이고 만 것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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