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교사 사망’ 추모 물결…교사들 “남일 같지 않다” 진상조사 촉구

김유나 2023. 7. 2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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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알려지면서 교직사회가 들끓고 있다. 교원단체들은 학교와 교육청, 교육부 앞에 근조 화환을 설치하고 고인을 애도하는 한편 경찰과 교육당국에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20일 사건이 발생한 서초구 초등학교 앞은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근조화환 400여개가 담벼락을 따라 늘어선 모습이었다. 주로 ‘동료 교사 일동’ 이름이 붙은 화환에는 ‘선생님 부디 편안해지시길 바랍니다’, ‘진상규명을 촉구한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20일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앞에서 추모객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교육계에 따르면 이 학교 담임 교사 A씨가 학교 안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연합뉴스
앞서 지난 18일 이 학교에서는 2년 차인 1학년 담임 교사 A(23)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사망 경위 등을 수사 중이다. A씨의 사망이 알려진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A씨가 평소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려왔다는 글이 퍼지며 논란이 됐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은 ”최근 A씨의 반 학부모가 교무실로 찾아와 ‘교사 자격이 없다’며 강하게 항의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A씨의 사망에 실제 학부모 민원 등이 영향을 미쳤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최근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 담임교사가 학생으로부터 폭행당해 전치 3주 진단을 받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된 상황에서 사망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교사 사이에선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분위기다.

이날 학교 정문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고인을 추모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검은 옷에 하얀 국화꽃을 손에 쥐고 찾아온 이들은 메모지에 추모의 글을 남기고 눈물을 훔치며 돌아섰다. 오후가 되자 전국에서 찾아온 150여명의 교사가 담벼락을 따라 줄 서 헌화를 했고, 하교하던 아이들도 ‘선생님 하늘에서 행복하세요’ 등의 메시지를 남겼다.
20일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를 추모하기 위한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
학교를 찾은 교사들은 “남 일 같지 않다”며 헌화가 끝난 뒤에도 쉽게 자리를 떠나질 못했다. 경기도에서 온 교사 김모(30)씨는 “신임 교사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남 일 같지 않아 비통하다”며 “학교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조차 교사에게 모두 감내하라는 사회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사 조모(28)씨는 “현재 학교는 온갖 행정업무부터 돌아서면 사고 치는 아이들, 학부모 민원까지 신규 교사에게 너무 큰 부담을 떠안기고 있다”며 “억울한 죽음에 서글프다”고 말했다.

인근에 있는 서울교육대학교 학생과 주민들의 추모 물결도 이어졌다. 서울교대 2학년에 재학 중인 심유정(23)씨는 “학교에서는 좋은 선생님이 돼라, 버텨야 한다 배우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선생님을 할 수 있을까 겁이 난다”고 말했다. 갓 돌이 지난 아이를 유아차에 태우고 추모 현장을 찾은 한모(30)씨는 “어젯밤에 이어 또 생각이 와서 왔다“며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가 크면 초등학교를 보낼 텐데 착잡하다”고 했다.

추모를 위해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던 교사 10여명을 학교 측에서 막아서면서 잠시 언쟁이 오가기도 했다. 교사들은 “학교 문을 걸어 잠그는 게 말이 되냐", "교장 선생님과 면담하겠다, 방문증을 달라"며 학교 앞에서 항의했다. 서울 영신초등학교 고은정 교사는 "교장 선생님을 만나 추모공간을 만들어달라고 하고 싶다"며 "방문증을 달라고 하는데 안 주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모 교사도 "외부에 사람들이 몰려 위험하니 학교 내 추모공간만 만들어달라는 것인데, 모든 건물 문을 잠그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학교 측은 결국 정문을 개방했고, 교사들은 학교 안으로 들어가 내부 담벼락에 추모글을 남기며 추모를 이어갔다.
20일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앞에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를 추모하기 위한 근조화환이 놓여져 있다. 뉴시스
서울시교육청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정문 앞에도 고인을 기리는 근조화환이 놓였다. 서울시교육청 앞을 지나던 몇몇 시민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근조화환을 바라보기도 했다. 30대 이모씨는 “무엇이 초임 교사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평교사를 보호할 만한 장치와 학교 측의 노력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다”며 “어제 인터넷에 화환을 어떻게 보내는지 검색해보고 잤다”고 말했다.

이소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평택송탄지회장은 검은 정장을 입고 1인 시위에 나섰다. 이 지회장은 “교사들은 신규 교사의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본다”며 “루머만 밤새도록 돌아다녀 교사와 학부모들이 많은 괴로움을 느끼고 있다. 교육청에서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혔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교사를 악성 민원에서 보호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날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평소 학부모의 무차별적이고 집요한 악성 민원으로 고통받았다는 교사들의 증언이 줄을 이었다. 자신을 초등학교 교사라 밝힌 B씨는 “수업시간에 돌아다니는 아이에게 주의를 줬다고 학부모가 학교에 찾아와 ‘정서학대’라며 소리치는 것이 현실”이라며 “모멸감을 느끼는 현실이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김용서 교사노조연맹 위원장이 20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서울교사노동조합 주최로 열린 신규 교사 사망 사건 및 사실 확인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교원단체들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고 사망에 대한 진상규명과 교권침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서울시교육청과 수사기관은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안타까운 죽음의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며 “악성 민원 등 중대한 교권침해에 대해서는 교육청이 수사기관에 고발해 학교와 교원을 보호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은 “유가족과 전국의 교사, 각 교육주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 어린 애도와 명확한 사실 확인”이라며 “교육부와 당국은 이 사안을 몇 가지 증거만으로 단편적으로만 판단해선 안 된다. 교사가 학교라는 장소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심도 깊은 추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교사노조와 함께 기자회견에 나선 유족도 A씨의 사망을 둘러싼 여러 의혹이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족 대표는 “지금 이 상황을 직면하기도 어려운데 여러 가지 밝혀지지 않는 의혹들로 유가족이 더욱 힘들어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지속적인 악성 민원으로 인한 고인의 고충이 있었는지 학교 측에 사실 확인을 하고 싶다”며 “경찰이 언급한 여러 사인 원인 중 ‘업무 스트레스’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도 확인하고 싶다”고 밝혔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입장문을 통해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유족이 동의한다면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분향소를 설치해 추모·애도 기간을 충분히 갖고자 한다”며 “고인의 사망원인이 밝혀질 수 있도록 경찰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0일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린 전국 시도교육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이날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린 전국 시도교육감 간담회에서 A씨의 사망에 대해 “심각한 교권침해가 원인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만일 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우리 교육계에 중대한 도전”이라며 “교원에 대한 교육활동 침해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교권 확립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해당 학교는 이날 “고인의 담당 업무는 학교폭력 업무가 아니었고, 해당 학급에선 올해 학교폭력 신고가 없었다. SNS에서 거론되는 정치인의 가족도 학급에 없다”며 온라인에서 제기된 일부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학교 측은 “무리한 억측으로 어린 학생이 상처받고 교사 명예가 실추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유나·김나현·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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