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오만과 편견

2023. 7. 2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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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현재의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자유교양대회'라는 소위 범국민 교양교육 진흥을 목표로 학생들에게도 독서를 통한 '교양증진운동'이 있었다. 자유교양대회에 참가하여 학교의 위상을 드높이는 것이야말로 영웅이 되는 시절이었고, 이런 행사는 중학교까지 이어졌다. 흥부전, 삼국유사, 구운몽과 같은 우리 고전은 물론 서양의 고전에 이르기까지 실력을 겨루는 그야말로 톱다운 교양운동이라 할 만했다. 돌아보면 공학도인 나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자극하고 현재까지 글쓰기에 영향을 주기도 한 긍정적인 이벤트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제인 오스틴의 유명한 소설인 '오만과 편견'은 연애소설이란 점에서 자유교양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키라 나이틀리가 주연으로 나온 동명의 영화를 최근 본 적도 있다. 지금부터 200년 전 영국 롱본이란 곳에서 베넷가 여성들이 당시의 남성 중심 사회에서 결혼까지의 모습과 성장, 속마음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별생각 없는 베넷가의 아버지, 자신의 딸들을 잘 출가시키려는 집요한 어머니는 물론 제인과 엘리자벳 등이 빙리와 다아시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일련의 미묘한 감정과 로맨스도 흥미롭지만, 계층과 돈에 기반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해방감 등을 제공한다.

오만한 다아시와 그를 편견으로 판단하는 엘리자벳이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렸지만, 여전히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오스틴이 그 어린 30대 나이에 소설을 쓰면서 '오만과 편견을 천재적으로 정의'했다는 점이다. 태도나 행동이 거만하다는 '오만'과 한쪽으로 치우친 공정치 못한 생각을 '편견'이라 사전적으로 말하지만, 오스틴은 간결하게 "타인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들게 하는 것이 오만"이며 "내가 타인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편견"이라고 정의하였다. 가히 천재적인 정의다.

현세의 우리는 그리고 우리의 현실은 바로 이러한 정의에 비추어 오스틴의 레슨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즉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는지? 여러 명이 엮여 있는 SNS의 단톡방이나, 조직에서 나는 과연 오만하지 않은지?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상처를 주지는 않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고 그러한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의 여러 현상에 반응하는 우리 모습도 마찬가지다. 서울~양평 간 고속도로를 둘러싼 여야 정쟁을 보면서 국민들은 오만과 편견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MZ세대의 새로운 감수성 앞에서 오래된 방식으로 가르치려고 하는 대학도 오만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영어를 잘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우리 땅에서 이미 200만명을 돌파한 동남아 외국인이 한국말을 잘하는 현상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발언하는 것! 그 또한 편견이다. 고령화 시대 노인 세대에 대한 불편한 견해, 실업급여에 관련한 여러 의견, 병원 파업과 간호법은 물론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그러한 갈등도 오만과 편견의 산물일 수 있다.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의 정의에 집중하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고, 가질 수 있는 그것들을 버리고 진정한 사랑으로의 승화를 가능케 하는 다독임이 필요하다.

[최기주 아주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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