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닛, AI로 디지털 병리 '붐' 일으켜달라" 의사들 손 내민 까닭
"디지털 병리가 확산하려면 수가(비용) 보전이 조금이라도 돼야 한다. 루닛이 혁신 의료기기 통합심사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는 없나"
정찬권 대한병리학회 디지털병리연구회 대표(서울성모병원 병리과 교수)는 19일 학회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한국로슈진단의 후원으로 개최한 '국내 디지털 병리 활성화를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패널토론에 동석한 팽경현 루닛 이사에게 수익화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정 대표는 "디지털 병리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도입에 따른 추가적인 이득이 없어 병원에서 투자하지 않는다"며 "디지털 전환의 효용성을 '맛'이라도 볼 수 있게 혁신의료기술로 비급여 적용 사례를 만드는 등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성토했다.
디지털 병리는 ①디지털 스캐너를 이용해 ②병리학적 슬라이드를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한 후 ③저장하고 ④이를 진단과 교육, 연구에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과도한 업무에 허덕이는 의사, 자신의 '건강 기록'을 보유·공유하고 싶은 환자, 기술 고도화로 새 시장을 창출하려는 기업 모두에게 이로운 기술로 평가된다. 특히, 환자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크다는 게 학계의 판단이다. 이날 정책간담회에 참석한 이경분 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는 "만약 암 환자가 완치 후 10~20년이 지나 새롭게 암에 걸렸을 때, 슬라이드는 사라지지만 디지털 기록은 남아 원발·재발암 여부를 손쉽게 확인하고 이를 통해 맞춤 치료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며 "여러 의사가 결과 분석에 참여할 수 있어 검사 시간이 12시간 이상 단축되고(한국보건의료연구원, 2022) 병원 간 자료 공유도 간편해 중복 검사 비율도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사 역시 디지털화된 정보를 통해 더욱 정확한 진단과 분석이 가능해진다. 업무량도 줄일 수 있어 서울대병원조차 전공의를 100% 채우지 못하는 '비인기과'의 설움을 해소할 기술로 비친다. 정 대표는 "병리 판독은 한 케이스가 한 장의 슬라이드로 끝나지 않는다. 암은 한 개라도 이를 작게 잘라 여러 장으로 만들고, 눈으로 하나씩 본 다음 결과를 종합하는 반복 노동이 요구된다"면서 "디지털화하면 수많은 슬라이드를 한 화면에서 비교할 수 있고 AI도 활용할 수 있어서 훨씬 편리하면서도 정확하고, 효율적인 진단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AI는 의사의 판독을 보조하는 데서 나아가 새로운 진단 영역을 개척할 '무기'로도 주목받는다. 팽 이사는 "AI를 적용한 디지털 병리는 환자 예후를 예측할 수 있는 새로운 '바이오 마커'(생체 표지자) 발견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암 주변의 면역세포 변화 등 미세환경 변화를 분석해 면역항암제에 반응률을 평가하거나, 단백질 발현율처럼 눈으로 봐서는 알기 힘든 정보를 AI로 발굴해 새로운 '진단 기준'으로 활용하는 식이다. 팽 이사는 "디지털 병리의 임상 도입을 위한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가치 창출이 필요하며 AI 기술은 이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루닛은 디지털 병리 AI 기술의 혁신의료기기 통합심사를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장점은 이처럼 다양하지만, 문제는 역시 비용이다. 유리 슬라이드를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하는 디지털 병리 슬라이드 스캐너, 이를 분석할 소프트웨어와 저장용 서버, 병원 간의 의료 데이터 공유를 위한 클라우드 구축 등에 수억원을 투자해야 한다. 조직 슬라이드 영상 하나당 사이즈가 영화 한 편 크기(3~5기가바이트) 정도인데 병리 검사 건수는 연간 2000만 건 이상으로 유지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김형주 한국로슈진단 전무는 "디지털 병리 도입 문턱을 낮추기 위해 넷플릭스와 같은 '구독 모델'을 도입해 병원의 요구에 따라 훨씬 적은 비용으로 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돕고 있다"며 "오픈 API(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라 루닛 등의 AI 알고리즘을 장착해 해외 병원 등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번 정책간담회 좌장을 맡은 한혜승 대한병리학회 이사장(건국대병원 병리과 교수)은 "디지털 병리의 영향력이 나날이 커져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 가고 있지만 고가의 초기비용과 수가 등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과제들이 남아있다"며 "이번 간담회를 첫걸음으로 환자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위한 보험수가 제정 등 제도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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