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카르타는 어떻게 한식의 성지가 되었나
오래전 보았던 인도네시아 여행 후기 중에 '자카르타에서 서울보다 더 정갈한 한식을 맛볼 수 있다'는 말이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난다. 한참 뒤에야 자카르타에 근무하면서 한식당을 경험할 기회가 생겼는데 그 후기가 사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 인도네시아 어디를 가면 한류 팬을 만날 수 있는지 묻는다면 한식당에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식당은 인도네시아인들이 한식을 통해 한국문화의 맛을 느끼고 즐기는 문화교류의 장이기 때문이다.
자카르타의 한식당은 어떻게 고유한 한식의 맛을 살리면서 한국문화를 전파하는 핫플레이스가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온전히 인도네시아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한인들의 도전과 노력의 결실이다. 인도네시아 한식의 역사는 한인 진출사와 맞물려 있다.
2020년 재인도네시아 한인회가 펴낸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에 따르면 한·인도네시아가 외교관계를 맺던 1970년대 초, 자카르타에 처음 한식당이 문을 열었다. 외국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식재료 수급 문제를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한다. 인도네시아는 1년 내내 더운 열대지방이니 한인 정착 초기에는 서늘한 곳에서 잘 자라는 배추나 무 같은 채소부터 구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현지 물류 사정과 식문화의 차이로 인해 신선한 고기나 생선을 조달하는 것은 지금도 만만치 않다. 적도에 위치한 이국땅에서 '서울보다 정갈한 한식'을 만들어낸 요식업에 종사하는 한인들의 도전과 노력은 인도네시아 한인 이주사의 한 장을 차지할 만하다.
이렇게 한인들의 향수를 달래주던 한식당이 2010년대부터 인도네시아에 불어닥친 한류 열기로 인해 변화를 맞게 된다. 교민, 주재원이나 한국에서 온 출장자들이 주요 고객이던 한식당에 한류의 영향을 받은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한류 초기에는 현지인이 한국인의 소개로 한식당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K팝을 사랑하는 젊은 세대, 한국 드라마에 빠진 중장년 등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스스로 취향에 맞는 한식당을 찾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수도 자카르타뿐만 아니라 반둥, 수라바야 등 주요 도시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다. 이제 인도네시아의 한식당들은 아예 현지인을 주요 고객으로 삼고 있으며 실제로 자카르타 한식당에서는 한국인보다 현지인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한편 인도네시아에서는 한인 셰프의 활약도 한류 확산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현지어에 능통하고 다양한 퓨전 한식을 구사하는 젊은 셰프들은 현지 TV 방송에 출연하거나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면서 한·인도네시아 문화교류의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현지에서 한식의 확산세는 김치, 라면은 물론 고추장 등 식재료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으며, 특히 떡볶이, 김밥 등 길거리 음식의 인기는 비빔밥과 불고기로 상징되던 한식의 대표 선수마저 바꿀 정도의 기세다.
올해는 한·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맞는 해로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대사관이 주도하여 한국 문화의 상징이 된 한식을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적도의 섬나라에서 꽃을 피운 한식에 서린 이주 한인들의 도전정신에 경의를 표하며, 한식을 매개로 대한민국과 인도네시아 사이의 쌍방향 문화교류가 더욱 활짝 꽃피울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김용운 주인도네시아 한국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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