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종말보다 두려운 건 허무감"
신작으로 돌아온 소설가 장강명
개인 서사 넘어 사회와 공명할터
잠수함 속의 토끼, 탄광의 카나리아…. 시대의 변화에 빠르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작가를 뜻하는 말들이다. 최근 신작 소설집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으로 돌아온 소설가 장강명(48)은 "소설이 사회를 바꾸는 도구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지만, 당대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내 글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사회와 기술의 관계에 대해 다룬 과학·기술·사회학 장르로 구분되는 이번 소설집을 두고 그는 "특별히 SF 장르라는 점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며 "기술로 인해 사회가 바뀌는 상황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옵터라는 이름의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해 누구나 원하는 얘기만 듣는 표제작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외에도 나치 전범 아이히만이 유대인 생존자의 기억을 그대로 체험하게 만드는 '알래스카의 아이히만', 연인관계의 결말을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온 시대를 담은 '데이터 시대의 사랑' 등 흥미로운 단편들이 담겼다.
PC통신 동호회에서 글을 쓰던 젊은 시절부터 SF 소설을 즐겨 써왔지만 정작 그의 글에는 SF에서 쉽게 연상되는 멸망, 아포칼립스 등은 등장하지 않는다. "어릴 때 SF 소설에서 보던 홍채인식, 생성형 AI 등은 이미 현실이 됐다"고 돌아본 장강명은 "디스토피아가 오지는 않았지만 기존에 우리가 믿던 가치들이 흔들리고 허무감에 빠졌다는 점에서 더욱 스산하고 무섭다. 다들 애니메이션 월-E에 등장하는 뚱뚱한 카우치 포테이토가 된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래서일까. "이제 40대 후반 중견 작가가 되며 생각해보니 30년간 열심히 써도 30권을 쓰기 어렵겠다"는 그는 "문학의 역할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 역할은 당대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쓰는 것이라 생각하고 남은 시간 소설과 논픽션에 집중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비정규직이 800만명에 달한다지만 그들을 다룬 이야기라면 '송곳'이나 '미생'을 떠올리지 소설을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나"라고 반문하는 그는 "최근 한국 문학이 작가 본인 이야기, 당사자성에 많이 집중하면서 엄청나게 오른 자산 시장, 노동 의지의 상실, 무너지는 중산층 등에 대해 잘 다루지 못하고 있다"며 "존 스타인벡이 '분노의 포도'를 쓰면서 직접적으로 재정 확대를 요구한 것이 아님에도 미국 사회를 바꾸는 데 기여했듯이 당대의 문제에 집중하는 글을 쓰다 보면 미래를 위한 예언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실질적인 노력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정진영, 이서수 등 다른 소설가 10명과 함께 '월급사실주의'라는 동인을 결성하고 오는 9월 출간을 앞둔 그는 "지난 5년 중 일어난 일을 판타지 없이 발품을 팔아서 써보자는 것이 우리 규칙이다. 코로나19 기간 여행사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최근에는 전세 사기에 관련된 단편도 써보고 싶다"며 의욕을 보였다.
[이용익 기자 / 사진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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