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빈 교실에서 얼마나 외로웠을지” 눈물바다 된 스물셋 교사의 등하굣길

구민주 기자 2023. 7. 2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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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 앞 추모 행렬…검은 복장으로 흐느끼며 애도
“교권 없이 교육 안 돼” “진상 철저히 밝혀야” “나일 수도 있었다”
학교 입장문에 분노…진입 통제하는 학교에 “열어줘” 외치기도

(시사저널=구민주 기자)

20일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서이초등학교에 재직중이던 2년차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추모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서이초 정문과 벽에는 꽃과 조화가 가득 놓여있고, 시민들의 추모의 글로 기둥과 벽이 가득 메워지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죽을 만큼 괴로웠던 날들에 힘이 되지 못해 미안합니다."(선배 교사)

"선생님 많이 힘드셨죠? 등교할 때마다 기억할게요."(5학년 재학생)

"교권 없는 교육 현장에서 교육이 보장될 수 있을까요."(교사 준비생)

서울 서초구의 서이초등학교에서 20대 교사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20일 학교 인근엔 전국에서 모인 추모객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검은 옷차림으로 학교 담장을 길게 둘러선 추모객들 사이에선 연신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동료 교사, 교대 동기, 어린 자녀 등과 함께 방문한 이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한동안 현장에 머물렀다.

이날 이른 오전부터 학교 앞엔 전국 각지에서 보낸 근조 화환이 200m 넘게 줄이어 세워졌다. 화환엔 대부분 '동료 교사 일동' '선배 교사' 등의 문구가 걸려 있었다. 교문과 그 옆 담벼락엔 A씨를 향한 애도의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들로 가득했다. 가장 많은 문구는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한참을 흐느끼며 준비해 온 글을 꺼내 교문 한 편에 붙인 정아무개씨는 "10년차 선배 교사로서 밤새 많이 울었다"며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정말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수많은 교사들이 현장에서 매일 겪고 있는 일"이라며 "고인이 빈 교실에서, 또 그 바깥에서 얼마나 홀로 힘들었을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아 마음이 찢어진다"고 말했다.

20일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서이초등학교에 재직중이던 2년차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추모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부당 요구, 교사 개인 몫…우리 반 학부모들도 제발 깨닫길"

오후가 되면서 학교 일대는 더 많은 추모객들로 가득 메워졌다. 일을 마치고 바로 이 곳으로 왔다는 4년차 교사 박아무개씨를 비롯한 동료 교사들은 무너질 대로 무너진 교권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우리는 학생을 지도해야 하는 사람인데, 여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권위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학교 담벼락 메모에도 "교권은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이다" "우리는 학교의 노예이자 학부모의 시녀"라는 글들이 다수 발견됐다.

이들은 또 "여러 부당한 요구들을 온전히 교사 개인이 감당하고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때로는 공포스럽다"며 A씨의 죽음이 이해된다고 얘기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제가 맡고 있는 반 학부모님들도 좀 깨닫고 자제해주셨으면 좋겠다"며 "저는 한 명인데 학부모들은 수십명 아닌가. 그걸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도 토로했다. 교사 임용을 준비하고 있다는 한 남학생도 "건너건너 선배들의 힘든 상황을 듣긴 했다. 주로 일부 학부모들이 곤란하게 하는데 학교는 별 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얘기였다"고 말했다.

추모객들은 이날 오전 학교 측이 발표한 입장문 내용을 두고 분노하기도 했다. 서이초는 이날 가정통신문과 입장문을 통해 A씨 죽음을 둘러싼 의혹들에 대해 해명했다. 학교 측은 "고인이 1학년을 희망해 배정했으며, 학교폭력 업무 담당도 아니었다"고 밝혔다.

스스로 '고인과 같은 나이의 자녀를 키우는 주민'이라고 소개한 한 추모객은 "입장문을 보며 죽음의 책임을 고인에게 일부 돌리려는 듯한 느낌을 받아 기분이 나빴다"며 "명명백백한 진상 규명이 이뤄지는지 우리 모두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해당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도 교문 앞에 국화를 놓았다. 5학년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선생님과 복도에서 마주쳐서 인사했던 기억이 난다. 그 선생님 반 교실이 지금 막혀 있는데 기분이 이상하다"며 "오전에 '그동안 감사했고 계속 기억하겠다'고 포스트잇을 붙였다"고 전했다.

서울시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문 옆 담벼락에 붙은 추모 포스트잇 ⓒ시사저널 이종현
서울시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문 옆 담벼락에 붙은 추모 포스트잇 ⓒ시사저널 이종현

교육계 "악성 민원 발 못 붙이게 총력 대응할 것"

앞서 일부 언론에선 이날 오후 3시부터 학교 앞 추모 문화제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공식적인 추모제 대신 오후 내내 시민들이 자유롭게 추모하고 돌아가거나 현장에 머무는 형식이 이어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추모객이 모여들면서 학교 측에서 관할 경찰들에게 주변을 통제해 줄 것으로 요청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이를 들은 추모객들이 반발하며 학교와 경찰을 향해 "교문을 열어 달라" "교장 나와라"라며 구호를 외쳤고 일부는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학교 내엔 여름방학으로 인해 학생들은 없었고 일부 교사만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처음 교단에 선 A씨가 빈 교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건 지난 18일 오전이었다.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직후 A씨가 학부모들의 민원에 자주 시달려왔다는 이야기가 급속도로 퍼졌다.

서울교사노동조합(서울교사노조)는 "고인은 학교생활이 어떠냐는 동료 교사의 질문에 '작년보다 10배 정도 힘들어요'라고 답했다는 제보가 있었다"며 "지난주 고인이 맡은 학급의 학생이 뒤에 앉은 (다른) 학생의 이마를 연필로 긁었다. (긁힌 학생의) 학부모는 교무실로 찾아와 고인에게 '교사 자격이 없다' '애들 케어를 어떻게 하는 거냐'라고 강하게 항의했다고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들끓는 교육계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오전 "교사가 학교 내에서 생을 마감한 것을 두고 심각한 교권 침해가 원인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 교육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교권 보호는 교사의 인권을 넘어서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는 것으로, 교육활동에 대한 침해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A씨의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교권 회복을 요구하는 교원단체들과 교사들의 움직임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이날 오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 교사가 당한 참담한 교권 침해를 넘어 전체 공교육의 붕괴로 작금의 상황을 엄중히 받아들인다"며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와 무고성 악성 민원이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 총력 대응할 것임을 분명히 선언한다"고 밝혔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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