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 열어줘” 동료교사들 거센 항의…담벼락을 돌고 돌아 이어진 추모행렬

김나현 2023. 7. 2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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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알려지면서 기나긴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20일 서초구 S초등학교 앞은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근조화환 400여개가 담벼락을 따라 늘어선 모습이었다. 주로 ‘동료교사 일동’ 이름이 붙은 화환에는 ‘선생님 부디 편안해지시길 바랍니다’, ‘진상규명을 촉구한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날 초등학교 정문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고인을 추모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검은 옷에 하얀 국화꽃을 손에 쥐고 찾아온 이들은 메모지에 추모의 글을 남기고 눈물을 훔치며 돌아섰다. 오후가 되자 전국에서 찾아온 수백 명의 교사들이 담벼락을 따라 줄 서 헌화를 했고, 하교하던 아이들도 ‘선생님 하늘에서 행복하세요♡’와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꼬불꼬불한 글씨로 한글자씩 적어내린 아이들의 메모에선 고인의 행복을 바라는 진심이 전해졌다. 국화 꽃바구니를 가져와 추모객에게 나눠주는 이들도 있었다. 
오후 3시부터는 멀리서 찾아온 동료 교사들의 기나긴 행렬이 이어졌다. 담벼락을 따라 수백 명의 교사들이 줄을 서 헌화를 하고 돌아섰다. 또래 교사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질 못했다. 교권 추락 등 교사를 보호하지 않는 현실에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고인과 같은 해에 발령을 받았다는 유모(27)씨는 “나도 지난 해 발령을 받아서 힘든 일들을 겪으며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며 “교사가 폭언을 듣거나 폭력에 노출될 때 그걸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인근에 위치한 서울교육대학교(서울교대) 학생들과 주민들의 추모 물결도 이어졌다. 서울교육대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심유정(23)씨도 “학교에서는 좋은 선생님이 돼라, 버텨야 한다 배우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에 선생님을 할 수 있을까 겁이 난다”고 말했다. 갓 돌이 지난 아이를 유아차에 태우고 추모 현장을 찾은 한모(30)씨는 “어젯밤에 이어 또 생각이 와서 왔다“며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가 크면 초등학교를 보낼 텐데 착잡하다”고 했다.
한편 학교 건물 안으로 추모를 이어가고 싶은 10명 내외의 동료 교사들과 이를 막아선 보안관 사이에 언쟁이 오가기도 했다. 동료 교사들은 “학교 문을 걸어잠그는 게 말이되냐”, “교장선생님과 면담하겠다, 방문증을 달라”며 학교 출입문 앞에 줄을 서 항의했다. 서울 영신초등학교 고은정 교사는 “교장선생님을 만나 추모공간을 만들어달라고 하고 싶다”며 “방문증을 달라고 하는데 안 주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심지어 방문증을 받은 영신초등학교 최모 교사는 “외부에 사람들이 몰려 위험하니 학교 내 추모 공간만 만들어달라는 것인데, 모든 건물 문이 잠그고 있다”고 전했다.
오후 3시40분쯤 동료 교사들의 거센 항의에 학교 측은 정문을 개방했다. 하지만 오후 4시30분쯤 경찰이 일부 정문 출입을 막으며 추모객들은 “열어줘”, “문 열어라” 등 구호를 외치며 거센 항의를 이어갔다. 교사들은 “우리는 조용히 담벼락에 추모글만 남기려는 것인데 왜 막는 것이냐”, “안전하게 추모하고 싶다”며 정문 개방을 요청했다. 잠시 개방된 순간 학교 안에 들어가 있던 교사들은 “막을 수록 위험하지 않냐”며 “안이 더 넓고 안전하다. 왜 나가지도 못하게 하냐”며 항의에 동참했다. 학교 측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 소리치는 추모객들과 이를 막는 경찰의 대치가 이어졌다.

최근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 담임교사가 학생으로부터 폭행 당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된 상황에서 사망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교사들 사이에선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분위기다. 현장을 찾은 초등학교 교사 조모(28)씨는 “현재 학교는 온갖 행정업무부터 돌아서면 사고치는 아이들, 학부모 민원까지 초임교사에게 너무 큰 부담을 떠안기고 있다”며 “억울한 죽음에 서글프다”고 말했다. 경기도에서 온 중등교사 김모(30)씨도 “신임 교사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남일 같지 않아 비통하다”며 “학교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조차 교사에게 모두 감내하라는 사회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글·사진 = 김나현 기자 lapiz@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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