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다시 일본의 맞수가 될 수 있을까 [이준희 기자의 ‘여기 V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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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한국의 맞수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일본을 꼽을 것이다.
그들은 한국 선수들이 일본 선수들의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일본은 여자농구 인프라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하다.
한국과 일본이 다시 '맞수'가 되려면, 진짜 변해야 할 것들은 따로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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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여기 VAR]
누군가 한국의 맞수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일본을 꼽을 것이다. 특히 그 영역이 스포츠일 경우엔 더욱 그렇다. 다른 경기에선 패해도 ‘한일전’에선 질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강하고, 선수들도 실제 그런 각오를 다진다. 때로는 너무 그런 생각에 몰두해 경기를 망치지 않도록 지도자들이 조언해야 할 정도다.
그러나 최근 한일 두 나라 스포츠를 보면, 맞수라는 말이 무색하다. 먼저 축구를 보자. 한국은 최근 17살 이하(U-17) 대표팀이 일본과 아시안컵 결승에서 맞붙었는데 0-3으로 패했다. 최근 벌어진 각급 대표팀 맞대결에서 5연패를 당했다. 심지어 점수도 모두 0-3이다. 이 정도면 일본이 한국의 천적에 가깝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한국 야구는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패배를 시작으로 일본에 6연패를 당하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열린 세계야구클래식(WBC) 조별리그 때 4-13 참패는 암담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일본은 우승컵을 들고 환호했고, 한국은 이후 선수들이 음주 논란에까지 휘말리며 체면을 구겼다.
지난 15∼17일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시에서 열린 2023 일본여자농구(WJBL) 서머캠프에 참가한 김완수 케이비(KB)스타즈 감독과 구나단 신한은행 감독은 입을 모아 “일본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한국 선수들이 일본 선수들의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정신은 사회의 토양, 즉 스포츠 인프라에서 나온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실제 일본은 여자농구 인프라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하다. 한 지역에만 고교팀이 500개가 넘고 선수들도 30∼50명에 달한다. 반면 한국은 주말 리그에 참가하는 여자고교팀이 13개에 불과하다. 여자중학팀 사이 맞대결에서는 참여할 수 있는 선수가 5명 밖에 없어 부상, 퇴장 등으로 선수들이 빠진 뒤 코트에 단 1명이 남은 팀이 몰수패를 당하는 촌극도 생겼다.
이처럼 수많은 선수가 경쟁을 거쳐 프로 무대에 오는 곳과 선수 수급이 어려워 리그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곳에서 뛰는 선수들이 가지는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목들이 부진할 때마다 손쉽게 선수들의 정신력을 문제 삼았다. 야구대표팀 음주 논란 등의 본질도 그랬다. 김연경(흥국생명) 등 주축 선수들이 대표팀을 떠난 뒤 하락세를 겪는 여자배구를 두고도 ‘배구도 모르는 팬과 인기에 취해 연예인이 된 선수들’이라며 비아냥대는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서머캠프 첫날 경기가 끝난 15일 저녁 6시께 다카사키 거리를 걸었다. 한 놀이터에서 남자아이 세 명이 배구를 하고 있었다. “20번, 21번, 22번.” 숫자를 세며 리시브와 토스를 반복하던 아이들은 햇볕에 피부가 까맣게 타 있었다. 더운 날씨에도 웃으며 배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국 거리에서 스포츠를 즐기는 아이들을 본 지가 참 오래됐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6학년이라고 했고, 떠나는 나에게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며 환하게 웃었다.
한국의 6학년 아이들은 그 시간 어디에 있었을까. 운동 부족으로 아이들의 정신 건강마저 걱정해야 하는 사회에서, 선수들의 정신력을 강조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가 있을 지 모르겠다. 한국과 일본이 다시 ‘맞수’가 되려면, 진짜 변해야 할 것들은 따로 있는 게 아닐까.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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