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많은 논술 선생, ‘10년째 자비 해외 탐사’ 지속”
[서울&] [다시, 시작]
사회 통합 이루고자 음악가 꿈꿨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결국 철학과에 진학
대학원 졸업 뒤 약 30년 논술 가르치며
‘우리 역사’ 문제에도 관심 계속 이어가
2014년부터 방학·시험 기간에 짬 내서
대만·중국·튀르키예 등으로 답사 떠나
현장서 ‘낮게 평가된 동양 위상’ 보면서
튀르키예어 학습, ‘뜨거운 딴짓’ 이어가
전세계로 10년째 답사를 다니는 논술 강사가 있다. 숙명여대 대학원에서도 강의하는 장운(59) 선생 이야기다. 인생 후반기에 그는 ‘자발적 답사가’가 됐다. 어떤 이유로 그가 “답사에 진심이 됐는지” 그 과정이 궁금했다.
학창 시절 그는 ‘유럽공동체’ 초대 의장 장 모네(프랑스, 1888~1979)와 피아니스트로 폴란드 총리에 오른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폴란드, 1860~1941)를 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모니로 사회 갈등을 조정해 통합을 이뤄내는 게 멋있어 보였다. 1984년, 음악을 좋아했던 학생 장운은 작곡과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철학과에 입학했다.
1996년 5월에 결혼해 주말에는 학원에서 논술을 강의하고, 주중에는 음반 회사에서 일했다. 회사가 월급은 제대로 줬을까? “컴퓨터도 내 카드로 긁고 정산을 못 받기도 했어요. 그래도 신났죠. 그런데 그 회사가 록 음반을 내고 망했어요. 그때가 자가용 시대라 차에서 음악을 듣는데, 누가 시끄러운 걸 듣겠어요?”
1999년 장운 선생은 철학과 대학원에 들어가고 교육방송(EBS)과 메가스터디에서 논술을 강의했다. 사회탐구 윤리 강사로도 일하고 논술 교육센터에서 대표를 맡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여행을 간 일이 있었다. “진시황 무덤을 보고 놀랐어요. 무덤을 지키는 병사들이 상투를 틀었더라고요. 중국도 상투를 트나? 이상했죠.” 진시황은 한족이 아닌 서융족이다. 한족은 상투를 트는 전통이 없지만, 서융족은 우리처럼 상투를 틀었다. 장운 선생은 이런 문화의 다양성에 흥미를 느꼈다.
2009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우리 역사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장운 선생은 이들의 논쟁을 관전했다. 한쪽에선 과거 우리 영토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로 논쟁이 한창이었고, 다른 쪽에선 그 논쟁을 무시하고 있었다. 장운 선생은 건강하게 논의가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 답답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답사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0년 동안 공을 들이면 성과가 있을 거 같았다. 그는 고고학자가 아니어서 접할 수 있는 자료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본인이 접근할 수 있는 언어와 미술, 음악 분야에 집중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중국어 공부도 매주 2시간씩 7년을 했다.
2014년부터 대만, 중국, 튀르키예 등으로 답사를 떠났다. 학원에서 강의해야 하니 방학과 시험 기간을 이용해 단기 답사를 다녔다. 답사를 가면 시간에 쫓겨 음식이나 잠은 시간이 적게 드는 걸 택했다.
2020년 장운 선생이 꾸준히 해외로 답사를 다닌다는 소식을 들은 언론사가 연재를 의뢰했다. 마침 코로나19 유행으로 답사를 다니지 못했던 그는 그간의 자료도 정리할 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2021년 ‘길 위에서 만난 ‘우리’’라는 제목으로 한겨레신문 <서울&>에 기사를 연재했다.
그즈음 장운 선생은 <블랙 아테나>(소나무 펴냄, 2006년)라는 책에 관심이 갔다. <블랙 아테나>는 영국의 학자인 마틴 버날(1937~2013)이 쓴 책이다. 책의 부제는 ‘서양 고전 문명의 아프리카·아시아적 뿌리’다. 마틴 버날은 책에서 19세기 유럽이 자신들의 식민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그리스에 영향을 준 문명은 지우고, 그리스 문명만을 탁월하게 포장했다고 주장했다. 마틴 버날은 이 주장의 근거로 고대 그리스 기록을 보여준다. 그 기록에는 그리스 문명의 뿌리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라는 게 담겨 있다. 책의 견해는 기존의 세계사 내용과는 판이했다. 그래서 장운 선생은 책의 견해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느 날 그는 지인과 ‘문화의 전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현재 이탈리아 중부 지역에 사는 에트루리아족은 원래는 현재 튀르키예에 있는 아나톨리아반도에 살고 있었다. 이들이 기근을 피해 이탈리아반도로 이동하며 자신들의 독특한 건축물인 공중목욕탕, 봉분 형태의 무덤, 원형극장의 아치를 가져왔다. 그 후 4세기께 중앙아시아에 살던 훈족이 유럽으로 밀고 들어왔다. 훈족에 밀린 게르만족은 이탈리아반도를 포함한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그런데 이때 말을 타고 등장한 훈족은 기마전에 유용한 ‘등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게르만족은 신문물인 ‘등자’를 이탈리아반도에 가져왔다. 이렇듯 민족이 이동하면서 동시에 문화가 전파됐다.
고대 그리스 수학자 피타고라스(그리스, 기원전 6세기께)는 젊은 시절 기하학이 발달한 이집트로 유학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오랜 시간 이집트에서 공부하고 온 피타고라스가 이룬 업적을 그리스만의 성취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장운 선생은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해 4월 그는 튀르키예를 13박14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약 2천㎞ 거리를 이동하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장운 선생이 아나톨리아반도에 있었던 고대 프리기아 왕국의 수도 고르디온을 가는데 멀리 산 같은 게 보였다. “가서 보니 산이 아니라 프리기아 왕국의 미다스왕 무덤이었어요. 신라왕 무덤이랑 비슷해 보여요.” 미다스왕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손대는 모든 것을 금으로 만든 인물로 그려지는데, 어리석게도 자기 딸까지 금으로 만들어 버렸다. 또한 미다스왕은 신라 경문왕처럼 ‘당나귀 귀를 가진 왕’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두 이야기가 비슷한데 이게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실크로드로 전파됐는지 그런 게 전 너무 궁금해요.”
다음번에 가고 싶은 답사지는 어딜까? “과거 히타이트제국과 전쟁했던 이집트 람세스 2세의 유적지와 함께, 여유가 있으면 지중해를 북동쪽에서 시작해 한 바퀴 돌고 싶어요. 이라크랑 이란도 가고 싶고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뭘까?
“그런 말 할 자격은 안 되지만, ‘그냥 기득권 다 엎어버리고 너희들 세상을 살아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국내에서 치고받고 싸우지 말고 국외로 가라고도 얘기해주고 싶네요. 유럽에만 국한하지 말고 사막이나 아프리카 지역에도 관심을 가지고, 사업 구상도 해보고 적극적인 마음을 가지면 좋겠어요.”
학생 장운은 음악을 좋아했고, 음악이 가진 사회 통합의 힘을 멋지게 생각했다. 그래서 본인도 사회 통합에 기여하는 삶을 살고자 했다. 논술 강사가 된 그는 역사 논쟁을 보고 답을 구하기 위해 직접 길을 나섰다. 그의 가슴은 여전히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그는 꾸준히 튀르키예어를 배우며 다음 답사를 준비하고 있다. 장운 선생의 ‘뜨거운 딴짓’을 응원한다.
강정민 작가 ho098@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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