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흑해 우크라행 선박, 군사화물 운반선으로 간주" ...국제 밀 가격 급등
백악관 "러, 민간 선박 공격 후 우크라 비난 가능성" 경고
선물시장서 밀 9% 급등
WFP "저소득국에 잔인"…러 "우크라 곡물 3%만 저소득 국가로" 반박
흑해곡물협정 중단을 선언한 러시아가 20일(현지시간)부터 흑해를 통해 우크라이나로 가는 화물선을 잠재적인 군사 화물선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그 영향으로 국제 곡물 가격은 치솟았다.
로이터, AFP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러시아 시각으로 7월 20일 0시부터 흑해를 통해 우크라이나 항구로 가는 모든 선박은 잠재적으로 군사 화물을 실은 적대적인 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러한 선박의 기국(선박이 등록된 나라)은 우크라이나 정권 편에서 우크라이나 분쟁에 연루된 것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했다.
전쟁 중에도 흑해를 통해 우크라이나 곡물을 수출할 수 있게 한 흑해곡물협정은 러시아의 연장 거부로 지난 17일을 기해 만료된 상태다. 러시아는 자국의 식량과 비료 수출 보장에 관한 내용이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하며 협정을 중단했다.
지난해 전쟁 초기에는 군함들이 흑해 항구를 차단하고 있었으며, 유엔과 튀르키예의 중재로 지난해 7월 흑해곡물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는 흑해를 지나는 선박이 전쟁에 사용될 군사 화물을 운반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가 시행됐다.
러시아의 협정 파기 이후에도 우크라이나는 흑해를 통한 곡물 운송을 계속 시도하겠다면서 국제해사기구(IMO)에 "권장 해상 경로를 임시로 구축하기로 했다"고 전달했다.
러시아 국방부의 반응은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조치 이후 나온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국방부는 군사 화물선으로 간주된 선박에 어떤 조치를 할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흑해곡물협정이 파기된 이후 우크라이나가 흑해의 곡물 회랑을 전투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18∼19일 이틀 연속으로 흑해 항구도시 오데사를 공격했다. 러시아군은 성명에서 오데사 인근의 우크라이나군 시설들과 연료 시설, 탄약 창고 등을 야간 공습으로 타격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습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으로 수출 대기 중인 곡물 6만톤(t)이 파괴됐다고 반박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러시아 테러리스트들이 고의로 흑해곡물협정 기반 시설을 타격했고, 모든 러시아 미사일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정상적이고 안전한 삶을 원하는 세계의 모든 이들을 공격했다"고 비난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화물선의 안전한 통과를 보장할 수 있도록 튀르키예, 불가리아 등 흑해 주변의 다른 나라들이 군사 순찰을 하는 등 개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방은 러시아가 협정 중단으로 아프가니스탄 등 식량 부족 국가를 포함한 세계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일 회의에서 "서방이 흑해곡물협정을 '정치적 협박'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세계 곡물 시장에서 다국적 기업과 투기꾼의 배를 불리는 도구로 전락시켰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협정 참여를 위해 동의한 모든 원칙이 완전히 이행되는 경우에만 협정 재개를 고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백악관은 러시아가 흑해의 민간 선박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애덤 호지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19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항구 접근로에 추가 기뢰를 매설했다는 정보가 있다면서 "이는 흑해의 민간 선박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고 이를 우크라이나 탓으로 돌리기 위한 조직화된 노력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19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러시아가 흑해에서 우크라이나 항구로 향하는 모든 선박을 잠재적인 군사 화물선으로 간주하겠다고 발표한 직후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 밀 선물 가격은 9% 급등했다. 이는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세로, 이날 오전 내내 8% 상승한 수준을 유지했다. 밀 가격은 지난 17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보장해왔던 흑해곡물협정 파기를 선언하면서 이미 17~18일 이틀간 5%가량 상승한 상황이었다.
NYT는 우크라이나가 협정 파기 이후에도 흑해 곡물 수출을 계속 시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이날 러시아의 발표로 이 또한 쉽지 않게 됐다고 전했다.
특히 NYT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이러한 곡물 가격 상승 추세가 저소득 국가들에 비교적 큰 타격을 입힐 것으로 예상한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수석경제학자 아리프 후세인은 "이미 수십개국의 인구 수백만 명이 두 자릿수의 물가상승률로 고통받고 있다는 점에서 (곡물협정) 중단 시점은 잔인하기 그지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가장 취약한 인구 및 국가가 식량을 구하고 저렴하게 사들일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엔 데이터에 따르면 중상위 소득 국가가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의 98%를 차지하고 있지만, 나머지 곡물은 WFP가 사들여 긴급 식량 지원에 활용해왔다.
특히 WFP는 협정이 지속되는 동안 곡물 공급의 80%를 우크라이나산으로 채우면서 전년 대비 우크라이나 곡물 수입 비중을 크게 키웠다.
식량 지원 대상은 아프가니스탄, 지부티, 에티오피아, 케냐, 소말리아, 수단, 튀르키예, 예멘 등이다.
그뿐만 아니라 저소득 국가 국민들이 직접 곡물을 구입할 때도 국제 곡물 가격이 하락해야 유리하다고 NYT는 덧붙였다.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곡물 가격은 작년 5월에서 올해 같은 달까지 50% 하락했고, 곡물협정 체결 이후 식료품 가격이 안정세를 찾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가 그간 충분한 대체 노선을 개발해 흑해 항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가격 급등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계속되고 있다. 시카고 밀 선물가격은 17~20일 상승세를 보이면서도 아직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나 올해 연초 대비로는 낮은 수준을 기록 중이다. 강현철기자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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