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공산군 만남부터 협정 순간까지…사진으로 본 휴전 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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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7월 8일 개성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휴전 회담이 처음 열린 장소는 개성이었으나, 당시 개성 일대는 공산군의 통제 아래에 있었기에 회담 장소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에는 1951년 7월 휴전 회담을 위해 유엔군과 공산군이 만난 장면부터 첫 휴전 회담이 이뤄진 장소, 회담장 바깥 풍경, 대표단 모습 등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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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1951년 7월 8일 개성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유엔(UN)군과 공산군 양쪽의 연락장교가 모이는 자리였다.
유엔군 측에서는 제임스 머리 대령, 앤드류 키니 대령, 이수영 중령이 나왔다.
이들은 이틀 뒤부터 열리는 휴전 회담 본 회의에 앞서 절차적 문제를 합의하고자 머리를 맞댔다. 전쟁과 평화를 위한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한국 전쟁의 휴전 협정 체결 70년을 앞두고 당시 회담이 이뤄지는 과정을 담은 사진 자료를 20일 공개했다.
공개된 자료는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것이다.
위원회에 따르면 한국 전쟁 휴전 회담은 1951년 7월 10일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휴전 회담이 처음 열린 장소는 개성이었으나, 당시 개성 일대는 공산군의 통제 아래에 있었기에 회담 장소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후 양측은 장소를 옮겨 1951년 10월 25일 판문점에서 회담을 재개했다.
판문점은 당시 행정구역으로는 경기 장단군 진서면에 속했는데, 임진강의 지류인 사천강을 건너는 다리는 회담 초기부터 유엔군과 공산군의 경계로 간주했다.
당초 휴전 회담에 나섰을 때는 양측의 합의가 빠르게 타결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포로 교환 문제로 견해차를 보이면서 논의는 서서히 길어졌다.
그러던 중 1953년 4월 부상 포로 교환 문제가 해결되었고, 그해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체결됐다. 3년 넘게 이어진 한국전쟁이 멈추게 된 순간이었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에는 1951년 7월 휴전 회담을 위해 유엔군과 공산군이 만난 장면부터 첫 휴전 회담이 이뤄진 장소, 회담장 바깥 풍경, 대표단 모습 등이 담겨있다.
회담이 이뤄지는 동안 남북한 병사가 서로 대화를 나누거나 북한군 병사와 미군 병사가 함께 앉아 미국 주간지 타임지를 읽고 있는 사진 등은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사진은 전자사료관 누리집(http://archive.history.go.kr)에서 볼 수 있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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