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양평고속도로 공방의 본질
양평고속도로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양평고속도로의 노선변경안을 두고 여야 간의 정쟁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양평군이 군내 IC 설치를 원하고 그 과정에서 노선이 변경되었는데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 문제가 제기되었다. 김건희 여사가 땅값을 올리기 위해 도로의 노선을 변경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국민의 힘은 당초 예타안의 종점 근처에 민주당 출신 전군수와 김부겸 전 총리의 땅 구입을 지적하고 있다.
변경의 필요성 같은 논의는 뒷전이고 누가 어디에 땅을 소유하고 있느냐가 쟁점이 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을 따져봐야 할 때다.
크게 쟁점은 2가지다. 첫째 ‘노선 변경이 가능한가’ 둘째 ‘변경된 노선이 예타안보다 좋은가’ 이다. 노선 문제는 결론부터 말하면 변경가능하다. 예비타당성을 통과한 노선에 대해서는 국토부에서 타당성 조사를 한다. 한마디로 이 노선이 타당한 지를 다시 본다는 것이다. 무슨 기준으로? 실제 지형에 따른 환경 평가라든지 문화재발굴 여부, 현지주민의 민원 등을 검토한다. 검토후 별문제가 없으면 예타안대로 가겠지만 검토를 하다 문제가 생기면 노선을 수정해야한다. 한마디로 고칠 것이 있는지 보는 것이 타당성 조사다. 물론 예타안의 변경에는 한계가 있다. 기재부가 총사업비를 통해 변경범위를 통제하고 있다. 예타안보다 총사업비가 15% 이상 늘어나면 타당성재조사를 해야 하고, 조사결과 타당성이 없으면 사업은 중단된다. 변경의 한계를 돈으로 정하고 있는 것이다. 토목공사를 하다보면 예기치 못한 숱한 문제에 부딪친다. 노선이 일부라도 수정되지 않고 도로가 건설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따라서 노선 변경 자체를 문제 삼으면 안 된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노선이 55%나 변경되어 예타를 다시 해야 할 사안으로 보인다”고 한 말도 옳은 표현이 아니다. 55%가 바뀌더라도 예산만 더 들지 않는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실제로 최근 20년 동안 건설된 고속도로 24개 중 14개가 시점이나 종점이 변경되었다. 김지사는 강하IC를 포함한 강서면안을 주장했는데, 그렇게 한다면 노선이 L자로 되어 돈이 훨씬 많이 들고 노선도 30~40% 변경될지 모른다.
변경된 노선이 타당하냐가 더욱 중요하다. 환경, 기술적인 문제로 변경이 불가피하거나 주민 편의성 등에서 예타안보다 좋아져야한다. 그리고 총사업비가 15% 이상 늘어나서도 안된다. 지금 당장 불거진 문제는 양평군내 IC를 설치해 달라는 요구이다. 그런데 기존 예타안은 남한강을 건너 양서면에 들어 갈 때까지 광주시를 지나간다. IC를 설치할 수 있는 강하면을 지나지 않는다. 강하면을 지나려면 노선 변경이 불가피하다. L자형 비슷하게 노선이 굽어질 수밖에 없다. 굽어지면 노선이 길어지고 공사비가 늘어난다. 그럴 거면 노선의 방향을 조금 틀어서 고속도로답게 곧게 펴는 것이 좋다. 그런 과정에서 나온 안이 강상면 안이라 생각된다.
문제는 강상면 안이 ‘교통량, 주민 편의성, 환경 측면에서 더 좋은 안’이냐다. 국토부의 주장대로라면 강상면안이 기존 양서면 안보다 훨씬 나아 보인다. 전략 환경영향 평가자료를 보면, 우선 교통량면에서 강상면 종점이 1일 22,357대로 15,854대인 양서면보다 6,500대나 많다. 중부내륙고속도로 등에서 유입되는 차량 증가 때문이다. 통행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같은 돈을 들이고도 효과가 더 커진다는 것이다.
둘째 환경성 측면에서 뛰어나다. 국토부의 자료에 의하면 생태자연도 1등급 통과구간이 강상면은 1.09km인데 양서면안은 3.73km이고, 상수원보호구역 통과구간도 강상면은 10.32km이고 양서면은 12.25km로 더 길다. 철새도래지 구간도 강상면은 1.45km 양서면 쪽은 3.51km나 된다. 공사를 했을 때 지형의 변경정도를 나타내는 지형 변화지수가 강상면은 8.7㎥/㎡인데 양서면은 13.2㎥/㎡ 이다. 당연히 토공량도 강상면이 적다(강상면 590.6만 ㎥, 양서면은 835.2만 ㎥).
터널은 강상면 안이 19개이고 총길이가 13,940m로 개수도 많고 길이도 길다. 양서면은 16개로 12,330m이다. 강상면으로 가는 길에 산이 많아서 터널이 길어진 것 같다. 교량은 강상면이 26개로 양서면(15개)보다 많으나 길이는 4,520m(양서면 4,880m)로 더 짧다. 아마 양서면쪽은 남한강을 지나야 하므로 교량이 길어진 것 같다.
셋째 강상면 쪽은 양평의 중심인 양평읍으로 가는 관문이다. 인구도 제일 많은 곳이다. 당연히 보다 많은 양평사람들이 혜택을 보게 된다. 종점 변경에 대해서 양평군민의 반발이 거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훌륭한 대안을 놔두고 ‘왜 국토부가 강서면안을 예타안으로 제출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마 예타를 통과하기 위해서 거리가 가장 짧은 안을 제시하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길어지면 그 만큼 돈이 많이 들어가니 예타가 불리해진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예타를 통과하고 나서 진출입로와 노선을 변경하면 된다고 생각했을까? 그런 면에서 양서면 예타안을 제출한 국토부는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변경안에 돈이 얼마나 더 들어가느냐가 관건이다. 국토부는 140억원이 더 들어간다고 하는데, 시점부의 증액 소요 820억을 합해도 총사업비의 15%이내이다.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정치권은 이 주장이 진실에 부합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정치적 공방은 의미가 없어진다. 어느 노선에 누구의 땅이 있느냐도 중요하지 않다. 변경안이 예타안보다 더 좋아지기 때문이다. 특혜시비는 변경안이 나빠졌을 때 불거진다. 공익에 피해를 주고도 누군가에 더 많은 이익을 줬다면 이는 문제를 삼아야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양평사람들이 혜택을 보고 또 국가 전체적으로 더 이익이 된다면 이 정책 결정에 무슨 특혜 시비가 생길 수 있겠는가. 더욱이 조상을 모신 선산이나 살고 있는 집을 문제 삼는 것은 부끄럽고 치졸한 정치공방이다.
그러면 이 사안이 왜 정쟁으로 확대되었을까. 야당의 정치적 공세를 정치적으로만 대응한 잘못이라 생각된다. 야당은 원래 정부 정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하는 정치세력이다. 당연히 정치적 공격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야당의 공세에 대해서는 정책의 잘잘못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양평고속도로의 경우 변경안이 훨씬 좋은 안인데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가. 변경안이 더 좋다는 것을 당당하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면 될 일이었다. 아마 국토부장관이 양평고속도로 문제가 터졌을 때 이 사안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했는지 모른다. 변경내용을 제대로 알았다면 그렇게 대응하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으로선 변경안이 더 타당하다는 국토부의 주장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타당성 재조사를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 생각된다. 타당성 재조사는 사실상 예비타당성 조사를 다시 하는 것이다. 원희룡 장관이 말하는 백지화와도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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