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미래] 최저임금은 누가 결정하는가?
상생 취지 실종, 분배 경쟁 몰입
위원수 27명 과다… 축소 불가피
통합적 교섭 기반 재정비 시급
2024년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심의요청일로부터 110일 걸렸다. 최저임금은 노동력 가격을 국가가 결정해 법으로 강제하는 제도로서,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하는 금리와 함께 특수 상품에 대한 예외적 가격결정 시스템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매년 8월5일까지 최저임금을 결정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 3월31일까지 최저임금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한다. 위원회는 요청 후 90일 이내에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해야 하지만, 시간을 지켜 심의를 마무리한 적은 별로 없다.
개별 근로자의 임금결정을 위한 단체교섭은 쟁의권에 기반한 분배적 교섭의 형태이지만, 사회적 대화인 최저임금 결정은 통합적 교섭의 유형이다. 단체교섭이 제한된 파이를 나누는 제로섬 게임이라면, 통합적 교섭은 상생을 도모하는 ‘윈윈게임’이다. 분배적 교섭의 당사자는 각자 이익 극대화를 위해 상대방의 교섭력을 약화시켜야 하지만, 통합적 교섭의 참여자는 신뢰에 기반해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상호이득의 대안을 모색한다.
우리 최저임금위원회는 통합적 교섭의 탈을 쓴 분배적 교섭의 장이다. 위원회를 분배 경쟁에 몰입하게 만드는 이유는 27명으로 구성된 회의체 구조 때문이다. 의사결정 기구에 이해관계자가 많아지면 거래비용이 커지고 대리인 비용이 발생한다. 제도가 지향하는 목적보다 대리인들의 이해관계가 중요해지며, 이는 제도의 ‘주인’인 저임금 근로자의 이익에 손실을 초래한다. 2024년 최저임금 수준 심의에서 공익위원이 제안한 시간급 9920원 수용을 거부해 9860원 결정의 원인을 제공한 근로자위원의 선택은 대리인 비용의 전형적인 사례다.
1999년 4월부터 법정 최저임금을 시행한 영국의 저임금위원회는 근로자와 사용자를 대표하는 위원 각 3인과 공익위원 격인 독립위원 3인 등 총 9인으로 운영된다. 위원장은 독립위원 가운데 선출하며, 사용자위원과 근로자위원은 이해 대변에서 자유롭다. 위원 모두 객관적 자료에 기반해 최저임금의 합리적 수준을 토론한다. 위원회 회의는 대리인 역할의 배제를 위해 공개되지 않으며, 최종 협의는 격리된 상태에서 끝장 토론 형식으로 진행한다. 지금까지 권고안은 모두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독일 최저임금 제도는 단체교섭의 전통에 기반하고 있다. 근로자와 사용자를 대표하는 위원 각 3인과 공익위원 1인으로 구성된다. 7인 위원 외에 경제, 통계 등에 관해 자문을 담당하는 2인의 전문가가 의결권 없는 옵서버로 참여한다. 위원장은 회의를 주재하고, 노사 간 합의를 유인하며, 표결권은 있으나 투표자로서의 역할은 하지 않는다. 2015년 제도 시행 이후 지금까지 위원장이 표결에 참여한 적은 없다.
일본은 후생노동성에 중앙최저임금심의회를 운영하며 각 도도부현 노동국에 지방최저임금심의회가 설치된다. 중앙심의회는 근로자, 사용자, 공익위원 각 6명으로 구성되며 지방심의회가 지역별 임금을 유효하게 심의할 수 있도록 기준을 결정해 제시한다. 지방심의회는 근로자, 사용자, 공익위원 각 5명으로 구성된다.
주요국 가운데 우리 같은 대형 위원회는 없으며, 심의 과정이 생중계되듯 노출되는 사례 또한 없다. 제도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는 심의를 위해 위원회의 규모 축소가 불가피하며 회의 과정에서 이해관계를 배제하기 위한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통합적 교섭 기반 구축이 최저임금 제도 개선의 첫걸음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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