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럽급여’로 드러난 보수의 은밀한 계급투쟁 [아침햇발]
[아침햇발][저출생]
이재성 | 논설위원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한국의 인구 문제에 대해 ‘압축성장’에 이은 ‘압축소멸’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최근 칼럼에서 진단했는데, 나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인용한 잠정적 결론(고임금이 인구를 늘린다)에는 동의하면서도 ‘소멸’이나 ‘멸절’ 같은 극단적 수사는 수긍하기 어려웠다. 설령 인구가 지금의 5분의 1인 1000만명으로 줄어든다고 해도 소멸이나 멸절은 아니거니와, 표현을 세게 한다고 극적인 해법이 나오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극단적 표현은 보수언론이 더 자주 사용한다. ‘북핵보다 무서운 인구 재앙’ ‘집단자살’ 같은 비유가 예사로 등장한다. 얼마 전엔 보수지배권력의 이데올로그 노릇을 하는 한 신문에서 일본의 지방 국립대 체제를 부러워하는 칼럼을 봤다. 교토대를 비롯한 명문대가 지방 국립대여서 수도권 집중 현상이 우리보다 한결 덜 하고, 그것이 한국과 일본의 출생률 0.78명 대 1.26명이라는 차이를 낳았다는 내용이었다. 놀라웠다. 그걸 이제야 알았단 말인가. 일본은 옛 제국대학에 뿌리를 둔 도쿄대부터 홋카이도대까지 7개의 지방 국립대가 게이오대와 와세다대 같은 명문 사립대를 능가하거나 대등한 평가를 받는다. 민주노동당이 주창했고,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공약으로 채택했던 ‘국립대통합네트워크’(김종영 경희대 교수의 ‘서울대 10개 만들기’도 취지는 같다)가 바로 일본 같은 국립대 중심 체제로 대학 서열화를 완화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도모하자는 구상이었다. 자신들이 애써 무시하고 적극 반박했던 ‘좌파적 발상’까지 끌어들일 정도로 인구 감소가 심각해진 것이다.
무시하고 반박만 했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수도 있다. 그들은 입시경쟁 완화와 공교육 정상화를 외쳤던 전교조를 빨갱이 집단으로 낙인 찍고, 권력을 동원해 법외노조로 만들었고, 0교시와 자사고, 일제고사를 도입해 경쟁을 격화시켰다. 서울 집값 떨어질까 봐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고, 청년들의 한 달 월세보다도 적은 종부세를 내기 싫어 세금폭탄론을 날조해 조세저항에 나섰다. 그들의 집단적 탄압과 저항은 당당히 승리했다. 경쟁지상주의와 이기주의라는 소용돌이의 구심력은 어마어마했다. 반대하던 사람들도 죄다 휩쓸려 들어갔고, 그렇게 오늘의 ‘헬조선’이 완성됐다.
선진국의 출생률 저하를 경제 이론으로 분석한 행동경제학자 게리 베커가 살아 돌아온다면 그동안 한국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어리둥절할 것이다. 그는 자녀가 부모에게 주는 기쁨이라는 효용이 양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초과할 때 출산이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거꾸로 말하면, 비용이 효용을 초과할 때 출산을 중단한다는 말이다. 출생률 0.78명이라는 인류사 초유의 수치에서 젊은이들의 터질 것 같은 아우성을 기성세대는 읽어야 한다. 인구가 늘지도 줄지도 않는 2명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절반이 넘는 1.22명이 본능을 억제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양육의 한계비용이 과도하게 높은 것이다.
세계 최저의 출생률은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것이다. 한국의 보수지배권력은 자신들이 원인 제공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고 있다. <1984>의 조지 오웰식으로 말하면 ‘이중사고’(Doublethink)를 하는 것이다. 이중사고란 “두 가지 상반된 신념을 동시에 가지며, 그 두 가지 신념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으로 모순을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파놓은 구덩이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구덩이를 만든 논리와 시스템을 고수하면서, 아무리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도 효과가 없다며 화를 내고 있다. 양육비 몇 푼 더 준다고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임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처럼 딴청을 피운다. 그들이 성난 얼굴로 돌아보아야 할 것은 자녀를 낳지 않는 젊은 세대가 아니라 경쟁만능주의를 우상화했던 자신들의 과거다.
‘선글라스’ ‘샤넬’ 같은 키워드로 젊은 여성과 실업자에 대한 편견을 유감없이 드러낸 국민의힘의 ‘시럽급여’ 공세는 지나가는 에피소드가 아니다. 저출생·저성장 시대를 맞아 필연적으로 벌어질 사회적 재편을 둘러싼 큰 싸움의 일부라고 봐야 한다. 이들이 과격한 언어로 저출생 현상을 경고하는 저의가 여기 있다. 대통령이 직접 ‘디렉팅’하는 ‘건폭과의 싸움’을 비롯한 노조 파괴, 복지 퍼주기론, 시민단체와 공영방송 무력화 등은 조연에 불과하다. 지금 대기실에서 분장을 고치고 있는 진짜 주인공은 세금과 연금이다. 저출생·저성장 시대에 재정의 역할은 커질 수밖에 없고 세금도 늘려야 하지만, 입만 열면 나라 걱정인 자칭 애국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세금이다. 이들은 마치 세금의 존재가 깎아주기 위해 있는 것처럼 종부세와 법인세에 이어 양도세와 상속세까지 모든 부자세를 깎자고 조른다. 관리재정수지의 3% 이상 재정적자를 내지 못하도록 법으로 못 박는 재정준칙을 도입하자고 안달복달하는 것도 세금 내기 싫어서다.
카르텔이니 킬러규제니 하는 유행어 정치는 이 싸움이 누굴 위한 것인지를 은폐하는 바람잡이다. 속지 마시라. ‘부자들의 계급투쟁’은 이미 진행 중이다.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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