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진 오펜하이머의 삶...화려한 경력 불구 스파이로 전락 “양자, 블랙홀 연구 기틀”
양자 역학과 블랙홀 연구도 해
블랙홀 분야에선 ‘노벨상’ 받을 수준
지난해 스파이 혐의 벗고 명예 되찾아
SF영화 ‘인셉션’ ‘인터스텔라’로 국내에서만 약 3315만 관객을 동원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미국 최고의 과학자에서 조국을 등진 변절자로 전락한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그린 영화로 돌아온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핵 개발을 주도한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오펜하이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개봉을 앞두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오펜하이머의 드러나지 않았던 모습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17일(현지 시각)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일대기를 다룬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아메리칸 센추리’를 저술한 데이비드 캐시디 미국 호프스트라대 화학과 명예교수와의 인터뷰를 소개했다.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핵 개발을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끈 원폭 설계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캐시디 교수는 “그는 아인슈타인은 아니지만, 블랙홀에 대해 노벨상을 받을 수준의 연구를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펜하이머는 양자역학과 블랙홀 이론의 초기 응용 연구에 이름을 올렸다.
오펜하이머는 1939년 별이 붕괴해 블랙홀을 만든다는 내용의 연구를 발표했다. 전쟁이 일어나면서 잠시 묻혔지만, 물리학자 존 휠러가 1960년대에 다시 블랙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면서 인정받았다. 캐시디 교수는 “1990년대가 돼서야 블랙홀에 대한 실험적인 증거가 나왔다”며 “오펜하이머 교수가 그때까지 살아있었다면 노벨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캐시디 교수는 “1920년대 양자 혁명의 주역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볼프강 파울리, 에르빈 슈뢰딩거, 폴 디랙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양자 혁명의 두 번째 물결을 이끌었다”며 “하이젠베르크나 파울리보다 3~4년 어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펜하이머가 박사과정 때 발표한 ‘보른-오펜하이머 근사’는 양자 역학을 원자에서 분자로 확장·적용할 수 있는 근거로 많이 인용됐다.
오펜하이머는 과학 외의 분야를 즐기는 ‘덕후’이기도 했다. 캐시디 교수는 “오펜하이머 교수는 물리학에 전적으로 헌신하지 않았다”며 “물리학과 연구를 하면서도 문학을 읽고 다양한 언어를 접했다”고 말했다.
원자 폭탄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오펜하이머는 1942년 미국의 핵무기 프로그램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수장을 맡는다. 당시 프로젝트에는 엔리코 페르미, 에드윈 맥밀런 등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반면 오펜하이머는 노벨상은 받은 적도, 행정 경험도 없었던 데다 공산주의자들과도 친분이 있었다. 그러나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의 전폭적인 지지로 프로젝트의 책임자를 맡는다.
캐시디 교수는 그로브스 장군이 오펜하이머를 지목한 이유로 ‘물리학에 대한 이해와 설명 능력, 다른 물리학자들의 높은 평가’를 꼽았다. 그리고 “그로브스 장군은 오펜하이머와 관련된 기밀 보고서를 숨기면서까지 그 자리에 오펜하이머를 두려고 했다”고 밝혔다.
그로브스 장군의 계획대로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전체적으로 설계했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연구 그룹을 이끌며 폭탄에 대한 세부 사항과 방법을 알아내 맨해튼 프로젝트의 기반을 닦는다. 이후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된 핵무기는 일본에 투하돼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낸다.
맨해튼 프로젝트가 성공하자 미국 정부는 수소폭탄 개발을 원했다. 그러나 오펜하이머는 핵무기의 위력을 확인하고는 수소폭탄에 반대했다. 결국 정부로부터 공산주의자라는 의심을 받으며 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잃게 된다. 오펜하이머는 더 이상 관련 연구를 이어갈 수 없었으나, 캐시디 교수는 “내부자가 아니었을 뿐 높이 평가 받는 인물이자 미국 과학의 대변인이었다”고 설명했다.
1967년 오펜하이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를 따라다니던 옛소련 스파이 혐의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지난해 12월 제니퍼 그랜홀름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그에 대한 편견과 불공정의 증거가 밝혀졌고, 오펜하이머의 충성심과 애국심을 확인해 스파이 혐의를 철회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미국 정부는 오펜하이머의 명예를 회복하는 절차를 이어갈 예정이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국내에서 8월 15일 개봉한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李 ‘대권가도’ 최대 위기… 434억 반환시 黨도 존립 기로
- 정부효율부 구인 나선 머스크 “주 80시간 근무에 무보수, 초고지능이어야”
- TSMC, 美 공장 ‘미국인 차별’로 고소 당해… 가동 전부터 파열음
- [절세의神] 판례 바뀌어 ‘경정청구’했더니… 양도세 1.6억 돌려받았다
- 무비자에 급 높인 주한대사, 정상회담까지… 한국에 공들이는 中, 속내는
- 금투세 폐지시킨 개미들... “이번엔 민주당 지지해야겠다”는 이유는
- 5년 전 알테오젠이 맺은 계약 가치 알아봤다면… 지금 증권가는 바이오 공부 삼매경
- 반도체 업계, 트럼프 재집권에 中 ‘엑소더스’ 가속… 베트남에는 투자 러시
- [단독] 中企 수수료 더 받아 시정명령… 불복한 홈앤쇼핑, 과기부에 행정訴 패소
- 고려아연이 꺼낸 ‘소수주주 과반결의제’, 영풍·MBK 견제 가능할까